[연재소설 벽상검] 29회/ 3장 군난(軍亂) (5)
[연재소설 벽상검] 29회/ 3장 군난(軍亂) (5)
  • 이 은호 작
  • 승인 2020.10.0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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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하, 도무지 민씨들에게는 기대할 게 없나이다. 민겸호가 김병기를 자임하고 나섰는데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지요?"

"사영을?"

"웃기지 않으신지요?"

"하하하!"

대원군이 무릎을 치며 웃었다. 방안의 모든 인사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사영'은 김병기의 호다. 김병기는 하옥 김좌근의 아들로 안동김문의 중심적 인물이었다. 김병기는 대원군도 인정을 한 당대의 인물로 대원군 집권기간에 어영대장과 이조판서를 역임했다.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시도할 때 한사코 반대를 하다 벼슬에서 물러나 여주에 칩거를 한 적도 있었다.

병인양요가 발생한 후 도성안의 백성들은 물론 벼슬아치들이 가족을 피난시키고 자신들도 등청을 하지 않을 때 김병기는 오히려 모든 가족을 데리고 도성으로 들어와 오블리스 노블리제(Noblesse Oblige,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는 프랑스 말)를 실천한 강단의 인물이기도 했다. 김병기의 이 책임 있는 자의 도리를 듣고 대원군도 감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기록한 사람이 대원군을 못잡아 먹어 한이었던 매천 황현이니 믿을 만할 것이다.

"하하, 어떡하던지 전하와의 관계를 회복하셔야 합니다."

허욱이 말했다. 허욱은 대원군에게 수시로 직언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와 주상 간에 무슨 거리가 있누?"

대원군이 허리를 펴며 탐탁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합하, 그 말은 허욱이 조금 틀립니다요. 합하와 전하 간에 무슨 거리가 있겠는지요? 다만 중간에 낀 여우가 문제지요."

이주회가 또 끼어든다.

"여우라니?"

허욱이 이주회를 바라보며 반문한다.

"자네는 아직도 도성안의 여우를 모른단 말인가?"

"에끼, 사람아 합하 안전에서 무슨 망발인가?"

허욱이 입조심을 강조했다. 대원군은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웃음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그건 맞는 말이야."

"네에?"

방안의 모든 인사들이 입을 모아 물음을 표했다. 대원군도 민비를 여우로 보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대원군이 손짓을 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만 나가들 봐."

"합하, 다른 분부는 없는지요?"

"왕십리 무부들의 불만이 많다 하니 하소연을 귀담아 들어줘. 무부들이 무식하다 하여 너나 나나 나몰라라 하면 그 또한 나라의 근심일 터...잘 살펴보란 말이야."

대원군은 서안(書案) 밑으로 손을 넣어 붉은 주머니를 하나 던져주며 말했다. 주먹만한 은덩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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