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27회/3장 군란(軍亂) (3)
[연재소설 벽상검] 27회/3장 군란(軍亂) (3)
  • 이 은호 작
  • 승인 2020.10.0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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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하, 병졸들이 녹봉을 받지 못해 채소를 키우고 돼지를 키운다는 것이 말이 되는지요?"

이주회가 끼어들며 말했다. 대원군이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 수염을 만지며 말을 이었다.

"도성을 지켜야 할 군영이 농사를 짓는다는 말인가? 둔전을 가꾸는 것이 아니고?"

"합하, 사실입니다. 동대문 바깥의 마장이 모두 채소밭과 돼지를 키우는 돈장(豚場)으로 바뀌고 있는 실정입니다."

동대문 밖의 장안펄이나 답시리펄은 각 군영의 훈련장 겸 마장으로 사용하는 넓은 펄이었다. 훈련도감이 바로 동대문 앞에 있었고 부근인 왕십리는 군영의 초급장교와 직업군인인 갑사(甲士)들이 모여 살며 생업을 위해 훈련원 땅에 채소와 돼지 등을 키워 부족한 녹봉을 보충하고 있었다.

조선의 관원과 직업군인들은 4개월마다 한번씩 녹봉을 지급받았다. 위관급 장교인 초관이나 직업군인들인 갑사의 녹봉은 백미 두 섬에 잡곡 한 섬 그리고 무명 십여 필이 전부로 한 가족이 살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것이다. 그마저도 제대로 지급을 하지 못하고 결봉을 하는 것이 병영의 형편이었다.

"민겸호가 선혜청당상이지 아마?"

대원군이 장죽을 꺼내들며 말했다. 윤형수가 부싯돌을 커내 솜털에 불을 붙혀 장죽 끝에 가져다 댔다. 독한 연초 냄새와 함께 담배연기가 방안을 어지럽혔다.

"합하, 그놈이 문제입니다. 군영의 모든 자금을 그놈이 굴꺽하여 병사들 녹봉도 지급하지 못하는 거 아닙니까요?"

이주회가 민겸호의 이름이 거론되자 거침없이 지탄을 하고 나왔다. 민겸호는 얼마전 폭탄을 선물받고 죽은 민승호의 뒤를 이어 입적된 인물로 민비의 친정의 제사를 이어야할 입장으로 민씨척족의 중심으로 행세하고 있는 중이었다.

민승호는 대원군 부인 민씨의 친동생으로 대원군과는 처남매부지간의 매우 가까운 사이었다. 대원군이 가문이 영락한 집안에서 왕비를 뽑은 탓에 민비의 아버지인 민치록 집안은 대를 이을 아들도 없던 처지였다. 이에 대원군은 자신의 부인의 친동생을 양자로 입적시켜 외척의 발호를 경계하고자 한 것이 훗날 문제가 되어 악연으로 치닫고 있었다.

"군영 병방은 누군가?"

"박갑식입니다."

"박갑식이라면...?"

"한때 합하 밑에서 경주부사를 지낸 그자 말입니다."

윤형수가 군영의 병방을 말했다. 병방은 군영 대장과 같은 직급으로 주로 문인이 보직되어 군영의 재정과 감사역을 책임지고 있었다. 조선군은 이 병방직으로 인해 정예화되지 못한 점도 있다. 한 군영(사단급)에 무인인 대장과 문인인 병방이 양립하여 서로 견제하면서 갈등을 일으킨 탓에 단단한 군영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오늘날 북한군 편제가 조선군과 비슷하다. 북한군은 중대단위 부대부터 사단 군단까지 지휘관 옆에 정치보위부 소속의 또다른 부대서기가 있어 전군의 동향을 감시하고 정신교육을 시키면서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부분이 있는 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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