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23회/ 2장 박회(博會) (11)
[연재소설 벽상검] 23회/ 2장 박회(博會) (11)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9.24 16: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공, 조선은 아직 주자의 나라올시다. 이공이 잘 아는 선(禪)도 일본의 신문명도 주자 앞에서는 아직 어린아이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주자도 일본의 주자를 배우자는 것이 나의 말일쎄."

"일본의 주자요?"

"맞아. 일본의 주자."

김옥균은 이동인의 말을 들으며 입맛을 다셨다. 일본에도 주자는 있었다. 덕천(德川)시대 유학자인 산기암제(山奇闇帝 1648-1682)는 주자의 학문을 배워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면 무슨 유감이 있겠는가 할 정도로 주자학의 신봉자이자 일본 유학의 태두다.

산기는 주자학에 무엇인가 의문을 표하기 시작하던 덕천시대의 학단에서도 꿋꿋하게 주자를 신봉한 주자의 충신 중의 충신이다. 그런 그가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런 말을 한다.

- 오늘날 공자를 주장으로 하고 맹자를 부장으로 한 중국이 수만군대를 동원하여 일본을 공격해 온다면 공맹의 도를 공부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자들은 모두 답을 하지 못한다. 산기는 다시 말을 한다.

이런 일을 당하면 우리는 갑옷을 입고 손에는 창칼을 들고 나가 싸워 공자와 맹자를 사로잡아 국가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공맹의 도다.

17세기 일본의 대유학자의 이 말은 일본과 조선의 차이다. 이것을 학자 '박충석'은 조선유학의 지배주의와 보편주의와는 다른 일본의 상대주의적 개별주의 성향이라 분석을 한 바 있다.

이동인은 한마디로 현실이 법고를 능가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실용주의와 현실주의에 충실한 일본식 사고를 강조한 것이다.

"이공의 말은 모르는 것이 아니나, 우리 차근차근 생각 좀 하면서 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공 혼자서 조선의 개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김옥균이 더는 대화가 안되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동인이 그런 김옥균의 소매를 붙잡았다.

"왜? 술상이 탐탁지 않은 게야?"

"이공, 다음 박회에 꼭 참석을 하시지요. 그리알고 가보겠습니다."

"박회? 그거 좋지."

"그럼..."

김옥균이 헛기침을 한번 한 후 이동인의 거처를 나왔다. 안채에서는 장고를 때리고 거문고를 뜯는 소리가 들려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