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21회/ 2장 박회(博會) (9)
[연재소설 벽상검] 21회/ 2장 박회(博會) (9)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9.2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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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인과 김홍집의 만남은 극적이었다. 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일본옷을 입고 일본 관원으로 꾸미고 나타나 조선인임을 자칭하는 이동인의 출현에 놀라움과 감동을 한 사람이 김홍집이었다. 김홍집은 이동인을 기남자(奇男子)라 자신의 문집에 기록한 적도 있다. 이동인과 김홍집의 첫 조우를 일본 정토종 승려인 오쿠무라엔신(圓心)이 '조선국포교일지"라는 기록물 속에 남기고 있다.

-동인은 국은에 보답하고 불은에 보답할 결심이라 모든 일을 마다치 않으려 했다. (동인이) 수신사를 만나게 해 달라고 했고 '하나부사'와 '스즈키'는 감동을 하고 동인을 수신사와 만나게 했다. 동인은 일본옷을 입고 조선말을 하자 수신사가 이상하게 생각했다.

동인은 작은 소리로 자신은 조선사람이며 일본에 들어와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니 일본은 조선에 딴 뜻을 품지 않았고 다만 조선의 개화를 바라는 듯하니 하나부사(일본측)의 뜻대로 사절 상주와 인천 개항을 해 주어도 좋겠다 말하니 수신사가 무릎을 치며 "아 이 사람 기남자(奇男子)가 국은에 보답하려 하는구나" 하며 찬탄을 했다.

김홍집은 김옥균 박영효에 못지않은 선각자였다. 김홍집이 일본에서 처음 만난 이동인은 경이로운 존재였다. 김홍집은 밀항자 신분이었던 이동인을 일본에서 데려와 개화파의 유력자들에게 소개를 해주고 뒤를 적극 도와준다. 그러나 이동인은 김홍집의 기대(?)를 저버리고 김홍집보다 힘이 더 센 민영익에게 붙어 군왕의 지근에 들어간다.

이동인을 민영익에게 소개해 준 사람도 김홍집이었다. 김홍집은 이것이 섭섭했다. 동지라 생각했던 사람이 자신을 한갓 이용물로 치부한 것에 분노를 한 것이다.

"이공, 우리는 개화당 이전에 선비 아닙니까?"

"하하, 선비?"

"선비는 개화 이전에 선비의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할!"

"이공?"

"그대는 백척간두에 진일보를 한번 생각해 보라."

이동인은 공안 백척간두 진일보를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목소리는 방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두 눈은 붉은 핏발이 설 정도였다.

"끄응...."

김옥균은 신음을 토했다. 이동인은 승려였다. 그것도 선(禪)을 천착하는 선승이었다. 김옥균은 안다. 선승에게 세상의 이치와 예의 범절은 소용이 없다는 것을...

"고균, 백척간두에 서면 어찌해야 하나?"

"한발 더 나가야겠지요."

"이유는?"

"사즉생생즉사 아닙니까?"

"맞네. 김공에게 그 말을 전해주게. 그건 그렇고 고균?"

이동인은 자리에 다시 앉으며 찻잔에 뜨거운 찻물을 따르며 김옥균을 살갑게 불렀다. 목소리는 마치 형이 동생을 부르는 다정다감이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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