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14회/ 2장 박회(博會) (2)
[연재소설 벽상검]14회/ 2장 박회(博會) (2)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9.13 16: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철동 유대치의 사랑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유대치는 역관으로 중국을 무상으로 출입하며 중국에 들어와 있는 서양문물에 눈을 뜨고 서양문물에는 청맹과니에 불과한 조선의 지성계에 끊임없이 자극을 주던 인물로 김옥균이나 박영효 등 개혁적 신진사대부들의 등불 같은 사람이었다.

김옥균과 박영효가 유대치의 사랑방에 들어서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유대치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상관이면서 부마인 박영효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영효는 두손을 저으며 그들을 만류하고 말석에 털썩 주저 앉았다. 유대치가 웃음으로 그들을 반기고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환재선생은 오랑캐의 법이라 해도 법이 훌룡하고 제도가 아름다우면 그 법을 스승삼아 배워야 한다고 했소이다. 우리는 그동안 입만 열면 이용후생(利用厚生)을 말해왔소이다. 그러나 이용후생은 공허했고 정덕은 말뿐 아니었소이까?"

유대치는 환재 박규수의 말을 빌려 유교에서 말하는 삼사(三事)를 공박했다. 삼사란 '이용' '후생' '정덕(定德)'으로 상서(尙書)와 '좌전'에서 시작된 말이다. 이 삼사는 성리학으로 무장한 조선의 이데올로기의 정석이된 말이다. 유대치는 삼사 중 정덕과 수기(修己)에만 치중을 하고 이용과 후생에는 무관심한 현실을 지적하고 있었다.

"사장(詞章)이나 예론에만 몰두하는 것은 사실 허학이외다. 사장이나 예론은 이용후생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공허한 말놀음에 불과한 것이니 이 허학에 집착해온 댓가를 지금 우리 조선이 치르고 있는 것이라 하겠소이다. 그렇지 않소이까?"

"으음...."

"여러분, 우리는 자각해야 합니다. 깨어나야 한다 그 말입니다."

유대치는 공론과 허례의식에 물들어 농업과 상업 등을 발전시키고 기술을 촉진시키는 일체의 것을 등한시하고 배척해온 것을 조선의 후진성으로 보고 있었다.

"환재를 배워야합니다. 환재선생이야 말로 실사구시를 아는 시대의 학인이외다."

유대치는 박규수를 높게 평가했다. 박규수는 조선 개화파의 비조라 할 수 있다. 유대치 오경석 등도 청나라 사신단을 이끌고 중국에 들어가는 박규수를 여러번 수행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의기가 투합되었다. 박규수의 사상을 받아들인 것이다.

박규수의 수제자격인 김윤식은 박규수를 크게는 경전에 견고했고 작게는 금석문, 고고학, 의기, 잡복 등에 밝았다며 능히 실사구시한 학자였다 말한 바 있다.

"고균?"

"아, 네..."

유대치가 좌중의 김옥균을 지목해 말했다. 유대치는 김옥균에게 개화사상을 심어주는 한편 심오한 불교의 선사상을 주입하며 김옥균의 마음을 사로잡은 바 있다. 김옥균은 유대치를 통해 문물에 새로운 세상이 있고 학문에도 새로운 철학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