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이야기로 풀어 가는 성 평등 수업
[기획] 이야기로 풀어 가는 성 평등 수업
  • 홍석민 기자
  • 승인 2020.07.30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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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원 양평원 교수, 성인지 감수성 안내서 발간
경험 및 일상에 비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담아

지은이 / 변신원
성 평등에 관한 연구와 강의, 글쓰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편견, 시대의 감수성 변화를 끊임없이 비평해 온 성 평등 전문가. 현재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인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 여성 연구소 선임 연구원을 거쳤다. 여성 문학으로 시작된 관심이 점차 여성의 삶, 남성의 삶으로 옮아갔고, 궁극적으로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되어 모두가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성 인권과 성인지 감수성 향상 연구, 젠더 기반폭력 예방 교육에 매진하는 동시에 학교 성 인권 교재 개발 등을 통해 아동 청소년 교육에 관여하였으며 한국여성문학학회 창립 멤버, 한국여성의전화 전문 위원, 경기도 교육청 성 인권 특별 대책 위원회 위원, 사회건강연구소, 옥희살롱 회원 등으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는 ‘디지털로 사고하고 양성적으로 리드하라’,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공저)’, ‘한국여성문화사(공저)’ 등이 있다.

최근에 이슈가 되는 단어는 성인지 감수성이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사용하지만,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투 사건이나 n번 방 사건처럼 천인공노할 성범죄의 해일이 밀려올 때마다 성별 갈등이 소환되고 관련 이슈와 담론이 넘치지만 무엇이 바뀌고, 얼마나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느끼기에는 어렵다. 평등과 배려가 상식인 시대가 맞다면 왜 성을 둘러싼 편견과 차별, 혐오가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불행이 반복될까?

과연 우리는 무엇이 성 평등이고, 어떤 게 차별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꼬리를 무는 문제에 맞서 이 책의 저자인 한국양성평등진흥원의 변신원 교수는 일상과 맞닿아 있어 오히려 몰랐던, 또는 외면하거나 오해했던 성 평등과 차별 문제를 다각적으로 훑어본 후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해법을 안내한다.

날 서거나 자극적인 외침 대신 친절하고 편안한 어조로 건네는 그의 이야기 수업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관점과 일상을 점검하고, 성 평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로 풀어 가는 성 평등 수업’은 성 평등과 인권에 특별한 관심이나 배경 지식 없이도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일상에 비추어 보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은 젠더(gender) 입문서이다.

우정, 사랑, 가족, 공부, 일, 대중문화, 언어 등 일상에 공기처럼 스민 차별의 요소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기 때문에 청소년과 성인, 학생과 학부모(또는 교사) 모두에게 유효한 성인지 감수성 안내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학교에서 쓰이는 성 인권 교재 개발은 물론, 보건 교사를 포함한 성교육 전문 인력 양성 교육에 관여해 온 전문가들의 전문가로 오랜 연구와 강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 사이사이에 젠더와 관련된 최신 연구와 통계, 정부 정책 등 객관적인 자료까지 풍성하게 제시하여 책에 유익함을 더한다.

저자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인식을 갖게 되는 출발점, ‘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생물학적인 성(sex)과 사회문화적으로 만들어진 성(gender)이 다르다는 것은 익히 알지만, 젠더의 관점에서 주변을 세심하게 살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무지나 무관심의 문제만은 아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젠더 분쟁과 혐오 담론 탓에 우리 사회에서 젠더가 막연한 거부감과 피로감을 주는 존재로 취급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여 저자는 성 역할의 고정관념을 설명하는 대신 “교실에 쥐가 나타나면 누가 잡으러 갈까?”, “의사와 농부, 가구주와 같은 말을 듣고 어떤 모습을 떠올렸나?”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외모 지상주의를 지탄하는 대신, “왕비는 왜 세상에서 제일 예뻐야만 했을까?”, “인생의 동반자를 만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할 거리를 펼쳐 놓는다. 누구라도 거부감 없이 일상을 가로질러 사유하게 돕는 저자의 질문과 이야기들은 우리가 흔히 가진 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 그로 인해 저지르는 차별적인 발화와 행동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일상화된 차별을 감지하고 그 불합리함에 고개를 젓는 일. 성인지 감수성, 나아가 인권 감수성은 여기에서 싹트기 시작한다.

인식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차별의 요소는 개인의 일상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도 부작용과 피해자를 낳는다. 저자는 가벼운 일상으로 시작한 논의를 발전시켜 이 시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성폭력과 성범죄, 혐오 범죄 등에 관한 묵직한 고찰까지 제시한다. 잔존하는 가부장 문화와 성차별적 인식에 의해 위협받는 가정, 일터의 문제도 빼놓지 않는다.

이런 지점에서 볼 때 저자가 강조하는 성인지 감수성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기도 하지만, 건강하게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위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경쟁력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야기로 풀어 가는 성 평등 수업을 모두 읽고 나면 우리는 생물학적인 차이를 사회적 역할의 차이로 연결시키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다울 수 있는 사회가 이상적이라는 데 자연스럽게 동의하게 된다. 각자의 가치를 제대로 존중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차별과 혐오의 그림자가 드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지 감수성은 청소년들이 건강한 자기 정체성을 싹 띄우게 하는 좋은 토양이 되고, 더 이상 자라기를 멈춘 어른들이 인식의 감수성을 소생하게 하는 효과적인 길잡이가 된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성인지 감수성 바로 알기 <이야기로 풀어 가는 성평등 수업>. 이 책을 통해 혐오와 배척이 만연한 시대에 평등과 공존이라는 자명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밝은 눈, 바른 마음, 곧은 의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하나의 눈이 더 생긴다는 것은 축복이자 저주입니다. 더 이상 주어진 세계에 안주할 수 없으며, 눈에 보이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변화를 시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매우 보람찬 행보이지만 때로는 힘들고 안타까운 경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눈을 더 가진 우리는 불합리한 세계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게 될 수밖에 없죠. 그 눈 중 하나가 젠더(gender)입니다. (8~9쪽)

성 인지 감수성이란 기존의 성 고정관념을 성찰하고 인간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데 힘이 되어 줍니다. 성 인지 감수성을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사물과 사건을 구성해 봄으로써 사물과 사건을 보다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죠. (21쪽)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마침 불행의 돌을 맞아 힘든 사람들의 고통을 조롱하고 무시할지 모릅니다. (51쪽)

경험의 한계, 지성의 한계, 공감의 한계 등으로 인하여 만들어지는 고정관념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상상력의 한계, 행동의 한계는 너무 뼈아픕니다.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바라보는 경우에도 이런 오류는 무수히 발생할 수 있고요. 우리 모두 고정관념의 밧줄을 끊고 자기다움으로 뚜벅뚜벅 자유의 세계를 향해 걸어갈 날이 오길 기다립니다. (73쪽)

디지털 성 착취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가 얼마나 도덕적이었는지, 조심성이 있었는지 따져 보는 사회적 시선은 불합리합니다. 피해자를 관찰하고 규제하는 것은 오히려 가해자에게 자유를 주는 행동이니까요. 디지털 성폭력은 기술 발달로 인해 확장되고,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집단으로 발생되는 등 나름의 특성이 있지만 문제 해결의 열쇠는 결국 우리의 생각, 우리의 행동에 있습니다. (151쪽)

같은 말을 하더라도 어떤 말은 공포스럽고 어떤 말은 공포스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말하는 이가 사회적, 구조적으로 가진 권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192쪽)

성별 고정관념에 의해 약자가 받는 폭력은 연령이나 사회적 지위, 국가, 인종, 종교, 성 정체성 및 성적 지향의 차별과 함께 교차적으로 발생합니다. 이것을 폭력의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고 하는데요. 여성은 남성에 의해 차별받지만 여성 중에서도 백인 여성은 유색인 여성에 비해 우월한 대접을 받는다거나,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은 정규직 여성에 비해 성폭력 등에 더욱 취약한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226쪽)

사회는 결국 특권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으로 진화할 거예요. 그가 누구이건 그의 지위나 주어진 역할 때문에 권위를 인정받기보다는 인간으로서 신뢰받고 스스로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 때 존중받을 것입니다. (252쪽)

커다란 차별이 아니더라도 그다움이 아니라 여자다움이나 남자다움을 내면화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 아무런 의문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이 책을 돌담 벽 뒤에서 울던, 그 위로받지 못한 아이에게 바칩니다.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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