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197회/ 29장 통곡의 정주성 (1)
[연재소설 청룡도] 197회/ 29장 통곡의 정주성 (1)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7.2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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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에서 일차 패배를 한 홍경래군의 남진군이 정주성으로 후퇴를 하자 의주공략에 나섰던 북진군은 급하게 되었다. 김사용의 북진군은 별다른 전투 한번 없이 곽산 정주 선천 용천읍을 함락하고 각 지역에 군수와 유진장(지역 장수)을 임명하며 성가를 올리고 있었다. 조선군의 북방 전력이 안주와 의주에 양분되어 있어 북진군을 막아설 병력이 없었다.

김사용부대의 진격에 속절없이 항복을 한 '김익순'이 있다. 선천부사 김익순은 고을 부근의 산성으로 피신을 해 있다가  김사용의 항복 권유를 받고 스스로 새끼줄로 자신의 목을 묶고 투항을 한다. 그가 김삿갓의 할아버지다. 재주 많고 영리했던 손자를 절망케 했던 김삿갓의 전설은 홍경래난의 부산물이다.

초기 김사용의 부대가 별다른 전투없이 서북 6개 고을을 점거한 것은 대항군의 부재였다. 서북의 소동에 일차 진압에 나서야할 안주병영군이 남진군에 막혀 움직이지 못하자 북진군은 무주공산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서북에도 인물은 있었다. 반란을 꿈꾸는 자가 있으면 의병을 모아 구국(救國)하겠다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김견신(金見臣)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북진군이 용천에서 의주로 진격을 개시하자 의주에서 마중을 나온 부대가 관군이 아닌 김견신이 이끄는 의병이었다. 김견신은 의주 일대의 무뢰배의 대장으로 검계의 두령으로 불리던 인물이다. 그런 김견신이 의병을 참칭(?)하며 나선 것은 그의 노모 때문이다. 의주군지에는 김견신을 나라에 충성하는 의로운 아들로 만든 노모의 에피소드가 전한다.

김견신의 활약은 독보적이다. 김견신은 한량 중의 한량으로 홍경래와 더불어 서북의 양호(兩虎)로 불리던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김견신은 나라가 어려울 때가 사내에게는 기회라는 노모의 말에 느낀 게 있어 주변의 무뢰배들과 농민들을 규합하여 의병을 구성, 용천과 희천의 경계인 회군천(回軍川)에서 반군에 일격을 가한다.

김견신의 활약은 곧바로 조정에도 보고되어 장수로 발탁되고 난이 평정된 후 군수 목사 등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하며 의주의 유명인이 된다. 참으로 충과 역은 백지 한장 차이다.

이 사건은 승승장구하던 반군에게 충격이었다. 반대로 의주관군은 김견신부대의 전과에 용기를 얻어 의욕적으로 토벌에 나서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홍경래의 피습 소식과 정주성 후퇴는 곳곳에서 반군토벌을 명분으로 한 의병이 구성되는 악재를 만나게 된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반군 가담세력까지 의병으로 나서는 상황이 된 것이다. 북진군은 일단 정주성으로 후퇴를 하여 전열을 재수습하기로 한다.

후퇴과정에 의주병영의 좌영장 '윤욱렬'의 부대의 추격을 받게 된다. 윤욱렬은 만만치 않은 장수다. 북진군은 곽산에서 정주로 들어오는 통로인 사송야(四松野)에서 관군과 조우를 하게 된다. 사송야는 곽산의 장군산 앞의 넓은 벌판이다. 이 벌판에서 반군은 관군의 기보병 수천과 불식간에 마주치게 된다. 반군의 선봉은 이제초군이었다.

이제초의 선봉군은 사송야에 도착하기 전 운흥참(站)에서 관군 1초(120명)를 섬멸하는 전과를 올리고 기세를 올렸으나 사송야에서 관군의 공세에 치명적 타격을 받는다. 남진군의 홍총각에 해당하는 인물인 이제초가 전사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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