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191회/ 28장 순무영(巡撫營) (2)
[연재소설 청룡도] 191회/ 28장 순무영(巡撫營) (2)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7.1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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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대장에서 '순무영중군'으로 자리를 옮긴 박기풍은 막하로 오포장을 발탁하여 대동했다. 중군(中軍)에는 포도청 소속의 십여 명의 포교와 다모들이 함께 편재되었다. 모두 서북기찰에 경험이 있는 자들이었다. 중군을 장악한 박기풍은 장졸을 점검하며 출정태세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순무영 안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있었다. 선봉군으로 본군보다 먼저 발진해야할 선발대를 이끌 장수 김처한이 갑자기 정신이 돌아버린 것이었다.

김처한은 금위영 출신의 용맹한 장수였다. 선발대는 기마병 2초(240명)로 빠른 속도로 평양을 거쳐 안주로 이동하는 본군의 길을 여는 것이 임무였다.

"난 못가."

"장군?"

"나는 못간다니까. 죽기 싫어."

막하들의 설득에도 김처한은 막무가내였다. 이 이해할 수 없는 김처한의 행동에 조정은 분노했다. 김처한은 즉각 군문효시되고 선발대로 중군이 직접 나서라는 명이 떨어졌다. 전쟁에 나서는 중대한 상황에서 장수가 출전을 거부하는 웃지 못할 일이 있었던 것이다. 순조실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해괴한 일이다. 김처한은 군법으로 다스린다. 그리고 순무군이 출발하는 날 돈화문 앞에서 수레를 밀어주는 의식을 행할 것이다. 부대장들과 병졸들에게 사례도 할 것이다. 그날 오부(한양에 사는 장졸들의 가족들을 위문할 것이니 각 관아는 차질없이 준비하라.

-순조11년 12월24일


순조는 박기풍의 부대가 출발하는 돈화문 앞에 나와 수레를 말어주는 의식을 거행했다. 이 의식은 주례 군례에 따른 것으로 출정하는 장수에게 '부'와 '월'을 내리고 장수가 탄 수레의 바퀴를 군왕이 밀어주며 무운장정을 비는 행사였다. 조선왕조 오백년사를 통해 군왕이 전쟁에 나가는 장수의 수레를 밀어준 행동을 직접 한 사람은 순조가 유일하다.

이 군례는 당태종의 병법인 '위이공문대'에 수레바퀴를 밀어주는 것은 계속해야 하느냐는 태종의 말에 '이정'이 꼭 그럴 필요는 없다는 말이 나온 뒤로 '상방검'의 하사로 간소하게 대체된다. 그러나 순조는 이 고대의 군례를 되살려낸다. 그만큼 순조가 서북의 난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발군하라!"

"부대 발군!!"

선봉장이 된 박기풍의 군령에 오백여 명의 군마들이 한양을 떠나 개성으로 발진했다. 눈이 오는 겨울이었다. 그들이 성문을 나설 때 오군영의 악대가 출정가를 연주했다. 눈발이 내리는 길을 철퍽철퍽 이동하는 군마의 말발굽 소리가 둔탁했다.

"적당이 청천강을 넘었다면 안주가 위험하다. 안주가 그들의 손에 떨어지기 전에 도착해야 돼."

박기풍이 말에 박차를 가하며 부대의 이동을 다그쳤다. 실제로 박기풍의 부대는 한양을 떠난 지 삼일 만에 안주 근방에 도착하게 된다. 거의 밤잠을 안자고 이동한 결과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질서정연한 조선군의 면모를 본다. 한가한 학자들과 작문에 바쁜 작가들의 엉터리 같은 조선군의 모습들이 무색하다. 오늘날 가장 훈련이 잘된 공수부대 중의 공수부대인 '707공수'의 동계훈련인 천리행군을 방불케하는 조선군의 이동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할 것이 있다. 무려 10년간의 준비기간 끝에 발군한 홍경래의 정예가 순무영과의 교전이 아닌 지방관군의 일격에 예봉이 꺾였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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