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190회/ 28장 순무영(巡撫營) (1)
[연재소설 청룡도] 190회/ 28장 순무영(巡撫營) (1)
  • 이 은호
  • 승인 2020.07.1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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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8일 밤 봉기의 횃불을 든 홍경래군은 당일밤과 19일 단 이틀 만에 가산, 박천, 선천, 곽산, 정주 다섯 고을을 점령하고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군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시골의 군읍(郡邑)이 이천여 명의 봉기군과 이에 동조를 하는 성난 군민들의 거센 압박을 견딜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한양의 조정에 서북의 긴박한 소식이 전달된 것은 19일 정오 무렵이었고 장계는 20일 새벽에 들어와 국왕에게 보고되었다. 보고자는 안주병영 책임자인 이해우였다. 이해우는 조종영을 도와 그 지역의 군사를 관장하고 있는 무장이었다. 이해우의 보고는 18일 밤 봉기한 다복동의 홍경래군에 관한 보고였다.

또 한편의 보고자는 평양감사 이만수의 보고였다. 이만수는 순안에 있던 지방군 이초(240명)을 급하게 움직여 안주로 이동시켜 안주 방어에 나선다는 선조치 후보고의 장계였다. 조선실록에 보이는 이해우의 보고다. 1811년 12월20일의 기록이다.

평안 병사 이해우(李海愚)의 밀계(密啓)에,

“이달 18일 4경(更) 후에 영하(營下)의 주민들이 갑자기 술렁이며 거리를 메우고 성으로 나왔다가 해가 뜬 뒤에야 조금 안정이 되었으며, 잇달아 박천 군수(博川郡守) 임성고(任聖皐)가 사서(私書)를 장교에게 보내어 말하기를, ‘고을의 주민 강인(康麟)을 체포하여 조사·신문하니 진술하기를, 「가산(嘉山) 출신인 이희저(李禧著)는 청북(淸北)의 부민(富民)으로서, 몇년 전에 대정강(大定江)의 다복동(多福洞)의 심히 외진 곳으로 옮겨와 살았는데, 금을 채취한 이익을 가지고 인정(人丁)을 불러 모으므로 그 곳에 가보니, 수많은 군병이 검은 옷에다 푸른 모자를 썼고 창검(槍劒)과 깃발 따위가 있었으며, 또 마필(馬匹)을 둔취(屯聚)한 것이 있었다.」고 하였고, 당일 병영의 장교가 박천 장교가 가지고 있던 적첩(賊牒) 두 장을 얻어 와서 말하기를, 「적도가 이미 가산 고을을 침범하였다.」고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조정은 김조순 박종경의 세상이었다. 이들은 긴박한 국사 앞에서는 일단 정쟁을 멈출 줄 아는 노련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이 두 사람은 '정만석'을 관서위무사로 삼아 평양으로 급파를 한다. 정만석도 정조의 사랑을 받던 실무형 관료다. 이만수의 뒤를 이어 평양감사를 역임하며 홍경래난의 뒤처리를 맡아 큰 수완을 발휘한 사람이기도 하다.

조정은 정만석을 위무사로 내려보내면서 서북 전지역의 관장 영장 아전 그리고 만백성들에게 유문(공지)을 내린다.

-적당의 수괴를 잡아 바치는자에게 천금을 하사할 것이며 수령의 직을 내린다.

전쟁에서 심리전은 중요한 전략의 하나다. 때로 전쟁에 퍼트리는 심리전 한 편이 군대를 움직이는 것보다 큰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다. 반란으로 이름지어진 조선의 큰 사건들은 거의가 이 심리전에 무너진 사례가 많다. 이몽학 이징옥의 난에서 주모자들이 조정의 심리전에 말려 측근들의 칼에 비명횡사한 경우다. 이몽학이나 이징옥의 목숨을 취한 인물들은 모두 면천하거나 공신으로 승승장구했다. 홍경래도 이 심리전에 낭패를 본 케이스다.

순조 앞에 부복한 김조순 박종경의 머리에서 토포작전이 나온다. 토포군의 이름이 순무영(巡撫營)으로 결정된다. 지역을 돌며 백성들을 어루만진다는 의미다. 대장은 평양도 황해도 양도의 군사 행정 사법 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양서순무사'로 하고 이효헌(李曉憲)을 보임했다. 그에게 절도사 이하의 모든 장졸들을 즉결처분할 수 있다는 의미의 상방검이 내려진다.

이효헌에게 전쟁의 감독과 병장의 운영 군수물장의 처리 등 모든 권한이 주어졌지만 일선군을 움직여 반군을 직접 진압하는 작전권은 박기풍에게 떨어졌다. 김조순과 박종경의 권력의 조정이랄 수 있다. 박기풍의 보직은 순무중군(巡撫中軍). 그의 종사관으로 서능보와 김계온 등 순조 말기와 헌종 때 정치력을 발휘하게 되는 유능한 인재들이 임명된다.

순무영군은 일단 금위영에서 차출되어 만들어진 장졸 7초(840명)로 구성된다. 기마군 포수 사수(궁술)로 구성된 정예병이었다. 순무영군은 평안도에 입도하는 즉시 그 지역의 모든 병력은 순무영 예하로 편입할 수 있기에 막강한 전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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