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우리 시대 리더란?
[기획] 우리 시대 리더란?
  • 윤영상, 유우석
  • 승인 2020.06.23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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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혁신학교, 소담초등학교의 사례를 통해 본 코로나19 그리고 혁신학교

글 싣는 순서
① 그날부터 등교까지
② 진짜 배움은
③ 지침보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
④ 우리 시대 리더란
⑤ 위기에 시대에도 혁신학교는 대안이 되는가

우리 시대 리더란?
바야흐로 공유의 시대다. 코로나19는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곳을 강제로 공유시켰다. 그리고 앞으로 다양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숨겨져 있던 또 다른 곳이 공유될 것이다.

공유는 힘이 세다. 지금처럼 교통의 발달로 물리적인 이동도 빨라졌지만 온라인 기기의 발달로 모든 곳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혁신학교에서는 일찍이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사례 나눔, 수업 나눔의 이름으로 불리어졌다. 이 말은 정보의 상하 관계보다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육이 상하관계, 흔히 관료적인 교육에서 수평관계를 중심으로 네트워크 혹은 거버넌스 중심으로 교육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모두 방역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3월 1일, 삼일절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남긴 말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의료진, 보건소 등의 특정 기관에서 방역의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정확하게 코로나19 확산 예방의 핵심을 꿰뚫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비단 감염병이 아니라도 우리는 시민으로서 살아야 하지만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의 시대에서 꼭 들어맞는 말이다.

이 말은 모두 민주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시민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면  ‘근대 이후 사회에서 그 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중략> 시민은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의사와 행동으로 근대 국가에 주체로서 참여하고,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다양성의 시대다. 다양성은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되었던 가치들의 경계가 애매해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공동의 명확한 규칙을 얘기하고 있다.

“실내에서 뛰면 안 된다.”
아주 사소하지만 이러한 말은 학교를 다니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들어왔던 말일 것이다. 이 말은 다시 역으로 보면 실내에서 뛰는 사람(?)이 항상 있었던 것이다. 항상 뛰는 아이들과 말리는 어른들과 크고 작은 실랑이가 있었던 곳이 바로 학교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더 강력하게 작용되었던 것은 지금까지 학교에서 실내에서 뛰면 안 된다는 말이 생활지도의 중요한 키워드였다. 공동의 가치로 여겨졌던 말이다.

그런데 약간 상황이 바뀌었다.
1. 미세먼지로 운동장으로 나가지 못한다. 미세먼지로 인한 건강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2. 가령 나간다고 해도 5층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1층으로 내려와 운동장에서 놀려고 하다보면 10분 정도의 쉬는 시간은 턱없이 짧다.
3. 세종시의 경우 복도가 넓고 그 중에서 각 층마다 ‘창의공간’이라 하여 넓은 홀처럼 만들어서 ‘강당’만큼은 아니지만 꽤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운동장으로 나가지 못하고, 학급수가 많아 강당을 사용하지 못하는 학교, 특히 세종시의 학교에서는 운동장이나 강당을 대신하여 가끔 ‘체육시간’에 활용되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뛰면 안 될까?

또 다른 예를 들어보면
얼마 전에 작은 학교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이 학교는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협의하여 스스로 지킬 약속을 ‘생활협약’으로 정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이렇게 약속을 정했는데, 잘 안 지켜지는 규칙이 있니?”
6학년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실내에서 뛰지 않기로 했는데, 1학년 아이들이 뛰어요.”
“그래? 그럼 어떡해? 규칙은 지키고자 하는 약속인데.”
“괜찮아요. 원래 1,2학년 동생들은 에너지가 많아서 뛸 수밖에 없어요.”
6학년 아이의 시크(?)한 대답은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생각을 뒤집었다.
“멋진 생각이다. 규칙을 정했는데, 안 지키는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네 얘기가 선생님이 고민하고 있는 답이 될 것아.”
이 아이와의 대화에서 나는 규칙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규칙은 규칙을 지킴으로서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그 규칙이 필요한 사람(제안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1,2학년 아이들은 정말 그 규칙이 필요했을까?

명확한 규칙을 정하여 경계를 지어야 질서가 생겨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답을 원한다. 대부분의 그 답은 위(?)에서 내려주어야 힘이 생기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만족할 만한 현실적인 답은 없다. 앞서 얘기한 바대로 사회가 점점 다양해지고, 그 다양성에 만큼이나 경계를 세우고, 수많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 그 빈 공간을 어떻게 해야 할까.우리는 다양성을 만드는 사람들, 그 각각이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실내에서 뛰지 않는다.’ 라는 문제는 사실 안전에 대한 문제, 위생에 관한 문제,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문제가 ‘실내에서 뛰지 않아야 한다.’라는 중요한 이유다. 그러한 문제에 대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지금의 문제에 대해 진단’하고 ‘대안을 찾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 등교 수업을 앞두고 방역과 수업, 두 가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협의를 꾸준히 해 나갔다. 하지만 방역이라는 것이 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방역에 대해 학교 전체에 대한 사항들도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고, 학년에서, 학급에서도 챙겨야 하는 일이 수없이 많이 생긴다. 그러다보면 서로 상반 대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점점 미궁에 빠진다.

불안한 상황이었지만 우리 학교의 방역의 주체는 우리였다. 등교수업이 하루하루 다가오자, 각 학년, 학급에서 방역 준비 사례들이 단체카카오톡(단톡)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엄중하고 진지한 것이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로 재밌고, 발랄한 방법이 올라왔다. 아이들과 지내는 공간의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챙기는 사진과 영상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것을 하기 위해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 모두 방역의 주체가 되는 과정이었고 모습들이었다.

“선생님, 어제 학교에서 가서 저는 감동이었어요. 학교가 병원보다 더 디테일하게 방역관리를 하는 게 놀라고 선생님의 열정, 실력에 놀랐어요.”
등교 개학을 앞두고 한 학년에서 학부모들과의 간담회 자리를 다녀간 학부모의 메시지였다.

용감무쌍한 사람이 리더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아낌없는 헌신이 리더의 상징일 때도 있었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리더가 리더십의 상징일 때도 있었다.
코로나19가 미래 시대를 앞당겼다고 한다. 그 중에 하나는 ‘리더의 상징의 변화’다. 모두가 방역의 주체가 되어야 한 듯이 이제는 우리 모두 리더가 되는 시대가 왔다. 우리 모두 삶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작은 리더들이 더 큰 리더가 되고, 그들이 춤추게 만드는 리더가 우리 시대의 리더다. 학교혁신이 리더인 큰 리더인 이유는 ‘학교혁신이라는 판’은 우리에게 더 큰 영감과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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