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155회/ 23장 운산광산(1)
[연재소설 청룡도] 155회/ 23장 운산광산(1)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5.25 17: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11년 12월 시작된 홍경래난을 연구한 가장 유력한 학자인 정종섭은 난의 발생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유민의 다량 차출, 경영형 부농의 출현, 사상(私商)층과 특권 시전상인층과의 충돌, 광산노동자의 대량발생, 관료가 되지 못하는 다수의 지식층의 불만, 신분제를 질곡으로 느끼는 천민층의 반항, 이런한 것과 궤도를 같이 하여 봉건체제의 반동정권의 강화, 이같은 성격 속에서의 혹심한 흉년의 계속, 하층민들의 변혁에 대한 갈망이 높아지는 속에서의 정감록과 같은 예언서의 보급, 이와같은 사회분위기 속에서 평안도 일원에서는 사회변혁을 위하여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난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종섭, 홍경래의 성격)

정종섭의 논문은 70년대에 나온 연구 성과물이나 연구의욕과 충실한 자료 덕인지 아직도 홍경래난의 전범으로 여겨질 정도로 수작이다. 그러나 논점이 두루뭉술하고 피상적인 것은 아쉽다. 정종섭은 홍경래의 난 연구도 서북차별, 정감록의 도참횡행 등으로 치부해오던 그동안의 연구에서 크게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홍경래가 이희저와 함께 운산 촛대봉 아래에 광산을 열자 수백 명의 장정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운산'은 예로부터 큰 금광맥이 있어 크고작은 광산이 도처에 있었다.

"임금을 두 배로 준다며?"

"그도 선금으로 준다는 게야."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면서?"

"시험이라도 본다는 게야?"

"가마니를 들고 뛰고 돌덩이를 들고 오래 서 있기 등, 병졸을 뽑는 식으로 한다는 게야. 힘 좀 쓸 줄 알아야 광산에서 품값을 받을 수 있는 게지."

촛대봉 광산으로 몰려드는 일꾼들이 주고받는 말이었다. 노임을 좇아 서북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은 곳으로 몰려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함경도에는 수백 곳의 광산이 있어 조정의 관리감독은 느슨했고 열악했다. 그런 상황에서 금과 은을 캐기 위한 조선인의 엘로라도 열풍은 제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기호, 양서, 서북 등 6도의 금맥찾기가 도를 넘어 잠채의 무리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수령들이 엄하게 금해도 흩어졌다가 금방 다시 모여 막을 수가 없다합니다. 엄하게 법을 세워 영원히 막을 수 있다면 최선이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아예 금점 설치를 용인하여 세수를 받아야 할 겁니다. (순조실록, 서영보)

서영보의 말은 전국에 퍼져 있는 광산열풍을 말한다. 이 당시 조선천지는 금과 은을 캐기 위한 일확천금의 사회기풍이 조성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일확천금 속에는 도박, 간음, 음주는 물론 사기, 살인, 강절도 등 온갖 사회악이 함께 기생하는 것도 당연하다.

"아우 몇명이나 모였나?"

이희저가 본영으로 사용하는 막사 안에서 홍경래에게 물었다. 홍경래는 광산의 총책임자였고 이희저가 물주였다.

"어제까지 이백 명 정도 채용했습니다."

"이백 명? 겨우 그건가?"

"형님, 찾아온 사람은 오백 명도 넘습니다."

"그런데?"

이희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쓸만한 자들을 추리다 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강단과 체력을 갖춘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군요."

홍경래가 일꾼들의 장부를 탁자 위에 올려 놓으며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