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152회/ 22장 출병(出兵) (5)
[연재소설 청룡도]152회/ 22장 출병(出兵) (5)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5.2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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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은 고려말부터 개량 보급되어온 화약무기의 발달로 조선후기 한때는 세계최고 수준의 화약발사무기 체계와 기술을 보유한 때가 있었다. 당시 전세계적으로 화약을 이용한 발사체에서 나오는 탄환이 작은 고체에 불과하던 시대인 15세기에, 조선은 '대신기전'이란 탄환 길이 5미터에 무게가 40킬로그램이나 되는 엄청난 덩어리(?)를 1천 미터까지 날려 보낼 수 있었다.

특히 비격진천뢰에서 발사된 탄환은 탄착점에서 폭발을 하는 3차원 폭탄수준에 접근해 있었다. 대신기전의 바로 아래 급인 중신기전은 포차에 1백 발이 탑재되어 연속으로 적진에 투사할 정도였다. 조선은 조총의 개량과 발사수준 향상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군은 조총을 국방의 근간으로 치부할 정도였다.

일본식 조총을 시발로 거듭 개량을 해온 조선조총은 신류 장군이 나선 정벌에서 습득해온 서양식 조총의 분석과 연구로 또한번 발전한다. 점화식에서 발사식으로 조총의 성능이 개량되면서 숙종시절에는 1천 보 거리에 있는 인마를 살상할 수 있는 저격용 조총까지 만들어진다. 초기 조총은 화승식의 원시적인 구조였다. 이것이 점화식, 발사식으로 발전하며 조선후기 조선군은 10만 정의 조총을 보유하는 막강한 군대를 보유한 때도 있었다.

포도군은 전원 조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박기풍은 포도군을 선봉에, 향군을 후군에 세우고 산밑에 진을 치고 3일간 혹독한 진법훈련을 했다. 평생을 군문에 몸담아온 박기풍의 독전은 권위와 살벌함까지 있어 오합지졸에 불과한 향군을 피아를 분간하며 사격을 가할 수 있는 군대(?)로 만들어 갔다. 포도군이 진을 친 곳은 정방산 아래였다.

정방산 안에는 '성불사'가 있다. 성불사는 황해도에서 손꼽히는 절이다. 아직도 '응진전'과 '요사채'는 조선초기의 목조건축물의 백미로 꼽힌다. 성불사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이은상의 시에 홍난파가 곡을 더한 명곡이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정방산은 황해도 해주지역의 등뼈로 산이 깊고 넓어 예로부터 이 지역 도망자들의 고향(?)이었다. 명화적 용화는 정방산과 구월산 두 곳을 거점으로 암약하고 있어 토포군은 이 두 산을 뒤져야 할 판이었다. 작전은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끄응, 이런 모자라는 놈들 보았나?"

박기풍은 막사 안에서 연신 헛기침을 했다. 산중 깊이 몸을 숨긴 명화적을 날밤을 새워 찾아다닐 수만 없기 때문이다.

"오포장 방법 없겠나?"

박기풍이 오포장에게 의견을 물었다. 오포장도 별다른 방법이 있을 턱이 없었다.

"호호, 체탐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으니 조금 기다려 보시지요?"

"언제까지? 며칠 만에 그게 가능할까?"

박기풍은 훈련도감에서 지원을 받아온 체탐조를 거론했다. 훈련도감에는 첩보수집과 적지활동을 교육받은 아전들이 있었다. 일종의 첩보요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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