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143회/ 21장 암행어사 (3)
[연재소설 청룡도] 143회/ 21장 암행어사 (3)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5.1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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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에도 요언과 요설이 급격하게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 새로운 영웅의 출현에 대한 갈망이었다. 황해도에 나도는 요언은 미륵의 출현이었다. 미륵은 용화(龍華)다. 전방산의 한갓 허접한 산적들마저 용화를 칭하며 미륵세상을 장담하며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홍경래는 황해도에 나도는 요언이 서북의 그것과는 조금 다름을 알고 놀랐다. 서북지역에 홍경래가 퍼트린 요언보다 한층 역동적이고 뜨거웠다. 사실 황해도는 용화의 고향이다. 조선에 용화교라는 역천의 종교가 생겨난 고장이 그곳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요언 요서사건은 대부분 불교를 앞세운 이단종파들의 전유물이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허황된 혹세무민이다.

혹세무민은 용화세계를 꿈꾸는 미륵파와 정도령 운운하는 감결파로 나뉘어 8도로 퍼져나갔다. 이런 사건은 숙종 때에 한번 큰 사건이 일어났었다. 여환의 난이었다. 여환은 승려로 미륵을 참칭하고 황해도에 사는 무녀를 용화부인으로 삼아 미륵도래를 외치며 세상의 종말을 주장하며 큰 파문을 일으킨다.

여환이라는 자는 본래 통천(通川)의 중[僧]으로서 스스로 말하기를, ‘일찍이 김화(金化) 천불산(千佛山)에서 칠성(七星)이 강림(降臨)하여 3국(麴)을 주었는데, 국(麴)은 국(國)과 음(音)이 서로 같다.’ 하였고 또 수중 노인(水中老人) · 미륵 삼존(彌勒三尊)이란 말을 하고 그가 숭불하여 전국(傳國)하는 것으로 3년간 공부했다는 등 말을 하며 드디어 영평(永平)의 지사(地師) 황회(黃繪)와 상한(常漢) 정원태(鄭元泰)와 더불어 석가(釋迦)의 운수가 다하고 미륵(彌勒)이 세상을 주관한다는 말을 주창(主唱)하여 체결(締結)하고 기보(畿輔)·해서(海西) 사이에 출몰(出沒)하였다.

여환은 또 천불산 선인(仙人)이라 일컫고 일찍이 ‘영(盈) · 측(昃)’ 두 글자를 암석(巖石) 위에 새기고 말하기를, ‘이 세상은 장구(長久)할 수가 없으니, 지금부터 앞으로는 마땅히 계승(繼承)할 자가 있어야 할 것인데, 용(龍)이 곧 아들을 낳아서 나라를 주관할 것이다.’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은율(殷栗) 양가(良家)의 딸 원향(元香)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장가들었는데, 이상한 징험(徵驗)으로 능히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오게 하는 변화 불측(變化不測)함이 있다고 하면서, 양주(楊州) 정성(鄭姓)인 여자 무당 계화(戒化) 집에 와서 머물면서, 그 처(妻)를 용녀 부인(龍女夫人)이라 하고, 계화는 정 성인(鄭聖人)이라 이름하였다.
그리고 이내 괴이한 문서를 만들어 이르기를, ‘비록 성인이 있더라도 반드시 장검(長劍) · 관대(冠帶)가 있어야 하니, 제자(弟子)가 되는 자는 마땅히 이런 물품을 준비하여 서로 전파하여 보여야 한다.’ 며 인심(人心)을 유혹(誘惑)시키니, 한 마을 사람이 많이 따랐다.

또 ‘7월에 큰 비가 퍼붓듯 내리면 산악(山岳)이 무너지고 국도(國都)도 탕진(蕩盡)될 것이니, 8월이나 10월에 군사를 일으켜 도성으로 들어가면 대궐 가운데 앉을 수 있다.’고 핑계한 말도 괴서(怪書) 속에 있었다. (숙종실록)

여환은 일종의 휴거주의자다. 7월 17일 한양이 물에 잠겨 세상의 종말이 오니 백성들이 모두 모여 그날을 준비해야 된다는 말로 수백 명의 백성을 모아 실제로 도성안에 들어가 휴거를 기다리던 이들은 체포되어 20여 명이 참수된다. 사건이 희한하고 괴기하여 조정은 고민을 하다가 끝내 주모자급만을 골라 선별적으로 처벌한다.

이 요언 요서는 영조 때에 와서 남원 공주 가평 해주 등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영조는 밑도 끝도 없는 도참에 현혹되어 억울하게 죽는 백성들을 보고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말한다. 포청에서 잡아 조사를 해보면 엉뚱하고 아무런 준비도 힘도 없는 백성들이 수없이 다치는 일이 계속 된 탓이었다.

계룡산에는 수백 명이 모여 진인 정씨가 나타났다며 공주까지 행군을 하고 와 기마병에 짓밟히는 사건까지 나자 영조는 도대체 남사고가 누구냐며 도침의 근원지를 묻는다. 정감록이나 남사고 비결이 모두 감여가 남사고를 팔고 있었다.

홍경래는 황해도의 어수선함이 서북과 별 차이가 없음을 알고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조선 팔도는 어디를 가도 바싹 마른 나무더미였다. 누군가 불만 당기면 그것은 화산(火山)이 될 것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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