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141회/ 21장 암행어사 (1)
[연재소설 청룡도] 141회/ 21장 암행어사 (1)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5.06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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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는 새벽을 타고 한양을 빠져나와 개성 방향으로 방향을 잡다가 해주로 행로를 바꿨다. 이른 새벽에 떠나온 탓에 점심 무렵 한양에서 오십 리 정도 벗어나올 수 있었다.

"어제 그 포장 때문이지요?"

선아가 묵묵히 홍경래를 따르다가 길가의 한 주막에서 숨을 고르려는 순간 질문을 던졌다.

"그래 맞다. 딱히 잘못된 것은 없지만 기분이 그랬단다. 니가 고생했다."

홍경래는 주모에게 찬물을 한 대접 받아 마시고 선아에게도 권했다. 홍경래는 무엇인가 기분이 나빴다. 그가 장원전에 오른 선아의 바둑대회도 취소하고 도망치듯 한양을 빠져나온 것은 오포장의 비상한 눈초리 때문이었다. 자칫 홍경래 자신이 오포장의 농간(?)에 한양에서 발목이라도 잡히는 날에는 큰일이었다. 물론 오포장이 어떤 물증을 잡고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포장이 무엇인가 냄새를 맡고 그러는 것은 분명했다.

"여보 주모?"

"주모?"

갑자기 주막 안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십여 명은 족히 되었다. 행색으로 보아 모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들어가는 유생들이었다.

"허? 실없는 인사들일쎄. 선아야 어서 먹자."

홍경래가 수저를 들며 선아에게 말했다. 얼마후면 식년시였다. 3년에 한번씩 보는 식년시가 되면 한양은 조선팔도에서 모여드는 유생들로 몸살을 앓고는 했다. 정조24년 3월에 있었던 신미년 식년시에는 무려 11만 명의 수험생들이 몰려든 적이 있고 정조21년 무과시험에는 3만5천 명의 지망생들이 한양을 들었다 놓은 적이 있었다.

한양 인구가 20만을 조금 넘을 때 그 많은 인구가 과거를 이유로 몰려든다는 것은 기현상이었다. 응시생들은 열 살에서 칠십 노인까지 다양했다. 30명을 뽑는 과거에 11만 명의 응시생들이 몰리는 이상열기는 과거를 협잡과 부정으로 얼룩지게 하는 빌미가 되었다. 입격은 고사하고 과거장에 입장하는 것만 해도 이권(?)이 되는 이상한 일이 생긴 것이다.

이것이 성군 정조의 정치시기의 현실이다. 정조도 과거의 부정은 어쩔 수 없는 고질병이다 한탄을 한다. 정조는 엄청난 과거 응시생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명예 합격자들을 수천 명씩 양산시킨다. 보수와 근무처 없는 제삿상의 위패에 학생(學生)을 면하는 것이 전부인 과거합격증인 것이다. 정조는 무과 급제자들 중 태반이 활줄도 당기지 못한다 한탄을 한 적도 있다.

"박대감에게 줄만 대면 합격하다면서요?"

"맞아요. 요즘에는 박대감이 김대감보다 더 힘을 쓴다는구료."

"그래도 풍고가 세도가지요. 국구가 어디 보통 벼슬인가요?"

유생들이 요기를 하며 모두 한마디씩 박종경과 김조순을 들먹였다. 홍경래는 쓴웃음이 나왔다. 그들 중에 박종경이나 김조순과 줄을 댈 만한 사람은 한명도 없을 듯했다.

"그 따위 소리나 하려고 과거길에 오르셨소이까? 아니면 심심파 삼아 한양 유람길이라 나서신게오?"

홍경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일갈을 했다. 기백없는 인간을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과거길에 나선 유생들이 배경을 핑계삼아 입에 올린다는 것은 유생으로 낙제점이라 할 수 있다.

"임자는 우리를 뭘로 보고 하는 소린가?"

유생 하나가 화가나는지 소리를 쳤다.

"한양구경으로 길을 나선 못난 촌인사들로 보이오이다. 왜?"

홍경래가 당당한 모습으로 유생들을 일별했다. 그의 기백을 막아서는 유생은 한명도 없었다. 자칫 과거길에서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들을 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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