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123회 18장 의주만상 임상옥 (4)
[연재소설 청룡도] 123회 18장 의주만상 임상옥 (4)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4.0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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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註)

초기 조선사회는 관상(官商)과 관장(官匠)을 사회적 제도화하여 정부의 일체 수요를 관상·관장이 조달해 왔는데, 자유시전(自由市廛)과 시장(市場)이 발달함에 따라 관상·관장제도를 혁파하고 필요물품을 자유 상거래로 조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과 시장의 허용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조정은 자유 상공업의 추세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1791년(신해년)에 상업 자유화를 뜻하는 통공령(通共令)을 반포하기에 이른다. 이 ‘신해통공령’은 우리 역사에서 자유경제를 허용하는 정부의 정책전환을 뜻하는 것으로 그 의의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상공업의 발달은 화폐경제를 정착시킨다. 우리나라에서 주화 발행은 고려시대에도 시도되었고 조선 초기에도 시행한 일이 있으나 주화정책은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주화는 점차 교환의 주요한 매개물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주화는 숙종 때부터 점차 궤도에 오른다. 1878년(숙종 4)에는 주화인 상평통보를 법화로 채택하는데, 이후 영조와 정조 때에 들어오면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정착하여 백성들도 널리 주화를 사용하기에 이른다.

18세기에 주화를 시장거래에서 널리 통용하게 된 것은 상공업의 발달과 정부의 조세금납(租稅金納)이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상공업이 발달되면서 상공업자 중에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서 18세기 후기에 들어오면 부유한 상공업자가 늘어나고 이들은 몰락한 양반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상공업의 발달은 사람들의 가치관 및 경제의식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재출어농(財出於農)이라 하여 농업만이 가치창조의 생업이며 상공업은 가치를 이전하거나 형태를 바꾸어 놓는 데 불과하다고 생각하여 이를 경시하던 상공업에 대한 말업사상(末業思想)이 점차 바뀌어 가면서 상공업의 경제적 중요성이 인식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정부에서도 상공업을 주요한 세원(稅源)으로 삼게 되었고 국민들 중에서도 상공업계 진출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경제의 변화와 더불어 지식인들의 학풍이나 산업사회를 보는 안목도 달라져 갔다. 17세기에 싹터서 18세기에 성행한 실학은 이 전환기의 시대상을 긍정적으로 대변하는 개신유학자(改新儒學者)의 실용주의 사조였던 것이다.

실학자의 주장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신분질서인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사민사상(四民思想)을 기능 분화의 사민사상으로 옮기려 한 것이고, 또 농업·공업·상업에도 학문을 한 사람이 종사한다면 더욱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여 선비들이 이에 진출하기를 권장하였다.
19세기에 들어와 각종 기술서적이 발간되면서 경제의 과학화를 지향하는 것은 실학자들의 주장을 따른 것이라 하겠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18세기는 우리 역사에서 근대화를 지향하는 큰 전환의 시기였으나, 그 발전은 전통사회를 대체하여 근대 산업사회를 형성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았다. 우선 상공업의 발달에서 보더라도 18,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농본사회(農本社會)의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였다.

상공업의 시전특권(市廛特權)을 혁파한다는 상업자유화선언에서도 ‘육의전부재차한(六矣廛不在此限)’이라 하여 자유경제화가 철저하지 못하였으며, 화폐경제의 확대에서도 정부에 내는 세금 일부는 금납을 허용, 실시되어 왔으나 농민의 소작료는 여전히 현물지대(現物地代)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또 상공업자가 재화를 축적하면서 사회 일각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고는 하나 상공업자들이 하나의 사회 세력의 계층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공업자들은 상공업자로서의 사회적 지위향상을 확립하지 못하고 재화로써 양반의 신분을 삼으로서 기존 사회질서 속에서 지위상승을 기도하였다는 점은 서구의 시민계층이 자기 계층의 시민사회를 건설하려는 운동과는 크게 대조가 되는 미성숙단계의 표징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의 근대 산업사회 전개에서 상공업자가 상공업자로서 사회계층으로 부상을 시도하는 것은 개항 이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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