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115회 17장 무량사(无量寺) (3)
[연재소설 청룡도] 115회 17장 무량사(无量寺) (3)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3.2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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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임진왜란 당시 충청도 홍산에서 시작하여 임천, 남포, 정산, 청양, 대흥, 덕산현 등 일곱 개 현을 휩쓸고 홍주로 진입했던 이몽학의 난과 홍경래의 난이 매우 비슷했던 것에 놀랐었다. 반란의 준비과정과 양상 그리고 한 지역을 들불처럼 태우고 끝난 난의 전개 과정이 2백년의 시간적 차이를 두고서도 매우 닮아 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몽학은 동갑계라는 비밀조직을 통해 동지들을 모으고 승려와 노비층에서 선발한 장사들을 중심으로 정산현 청남펄에서 군대를 조련하고 일거에 일곱개 현을 들이쳐  함락시키고 현감들을 살해하거나 투항 받는 등 난의 전개과정이 홍경래난의 그것과 너무도 비슷했다. 특히 이몽학이 무량사에서 스스로 미륵의 화현이라는 주술적 신비를 가장하여 전란에서 의지할 기반이 없던 백성들을 현혹하여 난에 동참시키는 심리전을 홍경래가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이몽학은 무량사에 미륵불이 재현했다는 소문을 퍼트려 수만의 군중을 모으고 그날 법회에서 스스로 황금빛 승복을 입고 미륵불을 자처하며 사인거를 타고 홍산관아로 진격해 순식간에 홍산현을 점거했다. 일천여 명의 무장한 병력보다도 구름같은 인파들이 홍산관아를 장악해버린다. 홍경래는 바로 이 점을 차용하여 홍경래의 난에서 활용한다.

홍경래는 우군칙 김사용과 함께 천군(요동의 명 회복군)을 자처하며 짐승가죽으로 만든 모자와 옷을 입고 백성들을 선동선무한 바 있다. 그리고 이몽학의 난에는 군관출신 '한현'이 있다. 선조수정실록은 이몽학과 한현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주모자인지를 놓고 따지는 대목이있다. 홍경래외 이희저를 놓고 난의 주모자를 다투던 순조실록의 그것과도 비슷할 정도다.

"이쪽 상황은 어떤지요?"

홍경래가 환성에게 물었다. 서북에서 거사를 결행할 때 호응세력이 있어야만 조정의 힘을 분산시키고 유리한 민심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딱히 동지들을 모은 것은 아니나 일단 유사시 큰 소동을 일으킬 여건은 만들고 있소이다."

환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호서지방이라 말하는 충청우도는 경기(한양과 부근)에 못지않은 양반사대부들의 세력이 강한 곳이다. 호서지방은 율곡 이이를 종장으로 하는 조선 성리학의 맥을 이끌어오는 지방으로 양반이데올로기가 극점에 달해 있어 동지들을 모으기가 서북과는 다른 곳이었다.

"한양에서 출정할 관군을 얼마동안만 붙잡아 둘 수 있다면 족합니다."

홍경래가 방바닥 위에 서북 한양 충청도를 표시하며 말했다.

"얼마동안 한양의 관군을 붙잡아 두면 어떤 수단이 있으시요?"

"정예화된 무사 일천 명과 호응하는 민병 일만 명으로 단숨에 안주평야를 치고 한양에 입성할 겁니다."

"지금 일만이라 하셨소?"

"그렇습니다. 일만입니다. 포살수 일천이 선봉에 서고 뒤를 일만 명의 민병이 따릅니다. 그 뒤로 수만 아니 수십 만의 백성들이 노도와 같이 일어나 단숨에 한양을 쓸어버릴겁니다."

홍경래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그 말을 듣는 환성도 절로 신명이 나는 듯 장단을 쳤다.

"하하하. 일만의 군대가 아닌 수십 만의 백성들이 성난 파도처럼 한양을 들이친다...?  아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는구료."

"스님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암요. 힘을 보태야지요. 그것이 도탄에 빠진 조선의 민초들을 구원하는 길이며 부처님의 가피 아니겠소?"

환성이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하고는 홍경래의 빈잔에 뜨거운 찻물을 따랐다. 어린동자승이 빈 주전자를 다시 들고 나갔다. 선아는 산신각 앞에 서 있었다. 산신각은 요사채에서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있었다. 작고 볼품없는 건물이나 그 안에 금오 김시습이 직접 그린 자화상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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