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91회 13장 파국(破局) (7)
[연재소설 청룡도] 91회 13장 파국(破局) (7)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2.19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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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패한 김견신은 담배 오백 근을 내지 않는 조건으로 수하의 죽음을 묵인하기로 했고 홍경래는 상당량의 금(錢)을 형방에게 주어 그들을 즐겁게 했다. 춘대는 우발적 살인치사 용의자로 도피를 하여 용천관아의 추쇄를 받는것으로 결정(?)되었다. 홍경래 김견신 형방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조정한 타협안이었다.

"죽여주십시요."

춘대는 형방과 김견신 일행이 모두 떠난 기방의 마당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엄청난 손실이었다. 담배 천오백 근이란 군자금도 아까운 일이었지만 그동안 지역에 쌓아온 홍단의 위신에도 상당한 타격이 된 사건이었다.

"무엇을 잘못했나?"

"제가 너무 예민했던 듯합니다."

"무인이 예민하지 않다면 무인이라 할수 있겠나? 선수를 쓸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를 향해 날아오는 위협을 대처한 춘대 너의 본능적 대처니 탓할 일은 아니다. 그깟 담배야 다시 따면 되는 것이고 금전은 경비라 생각하면 되는 것...일어나라. 다만 평생 살인혐의로 추쇄대상이 된 것이 걱정이구나."

"장군!"

"일어나라. 신도에 갈 시간이다."

홍경래는 춘대를 일으켜 세우고 그의 등짝을 두드려주었다. 춘대는 장용영둔전에서 말단 장교로 있다가 둔전이 해산되고 난 후 홍경래를 만나 그의 충직한 경호무인이 된 사람이다. 홍경래는 사 척의 단신이었다. 사척(四尺)은 140센티미터 정도다. 관서평란록은 홍경래의 키를 사척오촌이라 기록하고 있다. 1미터 40은 조선시대의 도량형을 따져 나온 수치다.

이 기록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1미터 40이면 지나치게 작지 않느냐는 의문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성인 남자의 평균 키는 1미터 40 정도였다. 평균수명이 40세 정도되던 시대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자. 1미터 60 정도에 60킬로그램 정도의 몸이라면 장군감이란 소리를 듣던 때다.

얼마전 충청도 온양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오던 '충청군병일지'가 조유전에 의해 해제가 되었다. 이 자료는 약 4천 명의 충청도 군병의 신체상황을 기록한 자료인데 이 자료에 나와 있는 조선군병은 1미터 35에서 55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토지박물관의 충청도 속오군적에 대한 총 입력 건수는 4213건으로, 성명이 기록돼 실질적으로 파악 가능한 인원만 3883명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속오군적에 등록된 군병들의 평균 연령은 34.3세. 최연소 병사는 말을 돌보는 마정(馬丁)의 임무를 맡은 열 살배기 ‘종남’이라는 사내 종이었고, 최연로 병사는 ‘박소선’이라는 69세 화병(火兵·취사병)이었다.

또 전체 군병의 17.7%가 얼굴에 마마 자국이 있어 당시 천연두나 홍역 등 전염병이 창궐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직책별로는 기총·대장과 같은 장교급은 일반 군병보다 상대적으로 얼굴이 깨끗했고, 서기·군뢰(軍牢)와 같은 행정보조 특수직들은 모두 전염병력이 없는 인원을 뽑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충청도 속오군적에 등록된 군병들의 평균 신장은 4.00척으로 산출돼 137.9㎝로 계산됐다.

하지만 이는 비슷한 시기의 제주 속오군의 키와 약 10㎝가량 차이가 있어 측정에 사용된 자의 종류가 달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유전)

관서평란록의 홍경래의 키는 믿을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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