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88회 13장 파국(破局) (4)
[연재소설 청룡도] 88회 13장 파국(破局) (4)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2.1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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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장 바둑이 (1)순장 바둑판은 중국이나 일본에 없고, 연화문양 매화문양의 화점이 있는 바둑판이 그들 나라에 없다는 이유와 (2)구한말의 신문에 나타나는 순장 바둑의 기록을 토대로 우리 고유의 바둑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왔다.

그러나 중국 일본의 바둑판에 화점이 없다거나 연화문 매화문이 우리 고유의 것이라는 말은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다. 중국의 박국이나 바둑판, 그리고 일본의 장기판 등에 화점이 나타나고 연화문 매화문은 이미 동양3국의 공통 문양임을 무시하고 우리의 고유성만을 고집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梅는 설문해자에서 每의 훈독이라 하며 먹을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에는 梅를 열매가 거꾸로 매달린 모양이라는 한자의 자의를 설명하고 있다.
일본의 한문학자 백천정(白川靜)은 매화의 한자의 뜻이 나무 위에 제기를 올려 놓은 모양이라며 갑골문의 해석을 하고 있다.

매화는 한중일 3국이 공유했던 꽃이라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매화를 고노하누 목화(木花)로 별칭까지 하고 있다. 정창원의 목화자단기국도 이런 뜻에서 얻어진 이름이다. 화점에 매화 문양이 있다고 하여 우리의 양식이란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사실 우리의 꽃은 진달래 개나리 복숭아 꽃 등과 같이 우리화된 경우가 많다.

실제로 매화문양은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부터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문양이다. 연화 문양은 불교의 전파와 함께 해온 것이니 한중일 3국의 공유는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중국 바둑판에서 발견되는 간, 손, 건, 곤을 표시한 바둑판은 화점의 또 다른 형태로 8점, 16점 등의 형식과 관계없이 순장 바둑의 독창성을 상실시킨다.

세계 바둑사에 화점이 있는 바둑은 우리 고유의 순장 바둑이라는 인식을 무참하게 하는 것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772-846)다.
백거이는 一爭先破眼 六聚斗成花(일쟁선파안육추두성화)라 노래한다.
한 수로 눈을 파괴 빼앗고 6곳의 선점(화점)이 살아오르네.
이곳에서 나오는 聚를 주역 둔괘에서는 모이다란 뜻으로 해석한다. 집운, 설문해자, 국어도 마찬가지다.

순장 바둑은 19줄 바둑의 전유물(구한말을 제외하고)로 우리는 알았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도 17줄 바둑판과 19줄 바둑이 두어진 것이 기록으로 확인된다. 17세기 책인 '노걸대언해'에 보면 고려 상인이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며 구입한 물품 목록 속에 다음의 기록이 있다.

상기 10벌, 대기 10벌, 쌍육 10벌.(象棋十副 大碁十副雙六十副.)

바둑을 뜻하는 대기는 19줄 바둑을 말한다. 고려시대에 17줄 바둑은 碁로, 19줄 바둑은 대기로(큰바둑) 불렀다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6세기에 19줄 바둑이 나왔으나 고려 조선은 구한말까지 17과 19줄이 두어진다. 그러나 17줄 19줄이라 하여 별다른 차이가 없었던 듯하다.

얼마전 발간된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슈튜어드 컬린의 '조선의 놀이(1895년 간)'라는 책을 보면 컬린이 한중일 바둑을 거의 비슷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컬린이 쓴 이 책은 19세기말에 나온 것인데도 20세기 한국의 어떤 바둑책보다도 조선의 바둑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특히 조선의 장기는 중일의 그것보다 훨씬 진보한 것으로 체스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데 조선에서는 바둑보다 천대받는다는 기록은 압권이다.

컬린은 바둑이 조선식이니 중국식이니 일본식이니 하는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방인의 눈에도 당시의 바둑의 형태는 이상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본의 바둑학자인 증천광일(曾川廣一)은 "성무천황의 바둑판과 조선의 바둑판은 같다. 정창원 바둑판은 8세기에 이미 일본과 조선의 바둑 형식이 같았음을 알려 준다. 조선에서 5세기에 바둑이 성행했으니 일본도 그와 비슷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도 티벳이나 인도의 시킴 지방에서 17줄 바둑이 두어지고 있다. 시킴 바둑은 17줄에 6개씩 알을 배치하고 둔다. 순장에서 두 개씩이 빠진 것이다. 백거이가 노래한 육취(六聚)의 한 형태다. 이것을 순장 바둑의 역 전파로 볼 것인가. 우리나라의 바둑이 중국 티벳 인도로 수출이 된 것인가.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불문율이 있다. 바둑이라 해서 이 불문율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중국이나 일본의 기록에서 순장 바둑의 형식의 기록은 없으나 놀랍게도 이를 증거하는 기록이 조선에 있다. 김창업(金昌業)이다.

김창업은 숙종 때 인물로 사신단의 일행으로 연경을 다녀온 후 '노가재연행록'을 지었는데 그 속에 바둑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김창업이 어떤 중국인의 집에 묵었는데 그 집에 바둑판이 있어 주인과 한수를 했는데 바둑 두는 법이 우리와 같았다 기록하고 있다. 다만 배자(配子)가 두 곳이 비었다고 한다. 이 기록은 8개씩 배자하는 대신 6개씩 배자했다는 의미다. 백거이의 시를 뒷받침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1833년 순조 때 연행사의 서장관으로 갔던 김경선(金景善)은 연행록 유관별록 속에 중국의 여러 민속과 마술 등을 소개하며 바둑을 언급하고 있다.

'바둑 두는 법은 오직 중앙에 한 점을 놓는 것만 다를 뿐 나머지는 모두 우리와 같다.'

김경선의 기록은 중국의 약방가에서 동의보감(허준) 제중신편(강명길) 등 조선의 의서가 중국에 들어와 있음도 소개하고 있을 정도로 실감난다.

이 기록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순장 바둑의 형식 그대로다. 흑백간 8점씩 놓고 첫수를 천원부터 시작한다는 순장 바둑 그것이다. 오히려 당시 조선에서는 천원부터 시작하는 형식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이 기록은 우리 바둑사에 떠돌아다니는 유령의 순장 바둑의 베일을 벗겨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고고학적으로 가장 오랜 바둑판은 중국 하북의 망도에서 출토된 한(漢)의 바둑판이다. 19줄판은 당대의 무덤에서 나온 청자기국이다. 일본에서는 17줄, 19줄의 바둑판과 화점이 있는 여러 바둑판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분황사에서 발굴된 8세기 신라시대의 15줄 바둑판과 17줄, 19줄 바둑판들이 있다. 바둑은 15줄, 17줄, 19줄로 변화하며 방식과 수법에서 많은 발전을 해왔다. 그 와중에 배자 형식의 바둑이 있었던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어떤 한 지역의 전유물로 고집할 수 없는 문화양식(흥성의 여부는 차치하고)인 것이다.

이미 삼국시대 당의 고수가 신라에 왔고 바둑의 고수 박구(朴九)가 당에서 바둑을 두다 귀국할 때 그의 친구 '장교'가 전별가를 지어 부른 것은 당시의 바둑의 교류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원나라 시절 원 황실의 기대조와 고려의 고수들이 초청되었던 기록이 그를 증명한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의 고유 바둑만이 존재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순장 바둑은 이미 중국이나 일본에도 보편적으로 두어지던 바둑의 한 형식이다. 유달리 이 형식이 조선에 뿌리 깊게 남아있었던 것이다. 나는 순장 바둑의 형식을 우리의 기록에서 찾아 보려고 수많은 책을 찾아 보았다. 특히 조선 후기의 여항의 문집을 집중적으로 뒤졌다. 이서구, 김창업, 남유용, 조희룡, 신익, 조수삼, 이영위, 성대중,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 홍세태, 김도수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어떤 경우에서든 바둑에 관한 기록을 한 줄 이상씩 남긴 사람들이다. 나는 이들의 바둑 기록의 원문을 모조리 찾아 보았다. 그중에서 이서구의 기록에서 순장 바둑의 형식을 엿볼 수 있었다. 그중 한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이덕무가 지은 시다. 이덕무는 정정자이오(丁丁自而烏)라고 바둑 두는 모습을 표현한 적이 있다.

바둑판에서 텅텅 하는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이덕무는 소년 바둑대회를 보고 기록으로 놓치지 않은 세밀한 사람이다.그런 인물이 바둑돌 놓는 소리가 텅텅 한다고 헛기침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헛기침이 아니었다. 슈튜어트 컬린이 조선 바둑판은 속이 비었고 각 줄마다 철사줄을 메어 바둑을 둘 때마다 운율이 있다고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조선 바둑을 이토록 정교하게 취재한 컬튼의 눈에 순장 바둑의 형식이 아무런 눈길을 끌지 못한 것은 순장 바둑이 조선 고유의 것이란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으로 순장 바둑이 우리의 고유의 것이란 인식도, 순장 바둑은 없고 우리 바둑이 있을뿐이라던 기왕의 주장들은 모두 헛것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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