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87회 13장 파국(破局) (3)
[연재소설 청룡도] 87회 13장 파국(破局) (3)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2.11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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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순장 바둑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고유의 바둑을 이해하고 인식했다.순장 바둑은 현대식 바둑을 우리의 고유의 바둑과 구별하기 위하여 어느 시점부터 돌출적으로 등장한 단어다. 그러나 순장 바둑이란 말은 근거가 없는 말이다.

순장 바둑을 한국어문연구소에서 발행한 국어대사전에서 찾아 보았다.

순장(巡丈) : 전통 한국식으로 두는 바둑, 현대식 바둑에는 화점이 8개 있으나 순장 바둑에는 화점에 해당하는 순장이 16개 있다. 한 복판(천원)에 있는 장점(丈點)을 뺀 16개 화점에 흑돌과 백돌을 번갈아 맞서게 8개씩을 미리 배치하고 장점에 판마다 흑돌과 백돌을 놓으며 대국한다.

그러나 40만 어휘를 수록했다는 우리말큰사전(민중서관)은 국어사전과 한자가 틀리다. 巡丈이 順丈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두사전의 편찬 연대가 60년대다. 한자도 통일되지 않은 순장이란 말의 근원을 좇아보면 겨우 20세기 초다.

순장(巡將)은 조선시대 순청(巡廳)의 수장(정3품)을 일컫는 말이다. 巡丈이나 順丈은 한자의 허사(虛辭)가 아니면 도무지 해독하기 힘든 막 글자(?)다. 설문해자식 해독으로 보면 개미 허리에 쉬엄쉬엄 갈 척과 어른 장이 결합된 巡丈이 무슨 의미를 갖는가. 순할 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조선시대 관원의 이름인 순장이라면 이해는 하기 쉽다.

巡丈이나 順丈은 도무지 의미를 구성할 수 없는 한자 표기다. 우리의 고유의 바둑의 이름으로 붙이기에는 너무도 어이없는 조악한 단어인 것이다.

우리의 사서(史書)에 바둑이 나오는 것은 삼국사기 화랑세기 고려사 조선실록이다. 이 기록에는 바둑을 기,혁, 위기로 통일되어 나온다. 순장이란 말은 이 전통 사서에 나오지 않는 말이다. 우리민족은 기, 혁, 위기로 바둑을 써왔고 바독(둑)으로 읽고 말해 왔다.
한글로 쓰인 바둑의 최초의 기록은 훈몽자회와 박통사언해에 보인다. 16세기 17세기에 나온 책이다.

바독-바둑 위기라고 하고 장기-상기(象棋)라고 한다. (훈몽자회)

바독 두사 (下大棋)

오늘 비오니 바독 두기 좋도다 (박통사언해)

바독 두며 논담을 나누며 소일하고 (박통사언해)

훈몽자회는 바독-개를 적으며 화구(花拘) 어롱개라고 한다 기록하고 있다. 바둑의 흑과 백의 어울림을 무뇌로 인식하고 바둑 무뇌라 한 것도 특징이다.

바둑.

이 말에 순장이란 의미가 없는 한자어가 가당한가. 조선후기 사람 이덕무는 청장관전서에서 바둑을 수담(手談)으로 표기하고 있다. 안씨가훈에는 바둑을 수담 또는 좌은(坐隱)이라 한다고 적고 있다. 모두 의미가 아름답고 살뜰한 말들이다. 이런 바둑에 대한 알뜰살뜰한 의미를 두고 있던 조선의 문화 사회에서 순장이란 말은 진정 뜬금 없는 말이다.

순장 바둑의 최초의 말들은 구한말의 신문 중외일보에 처음 보인다. 그나마 순장이란 말도 없다. 기보만 한 장 전할 뿐이다. 그후 조선일보에 등장한다. 일본식 바둑이 들어오며 우리의 고유의 바둑과 구분하기 위하여 순장(아마 조선식 장기(?)라는 폄하가 깃든)이라 이름 지은것이 시초라고 본다.

순장 바둑.

한자와 한글의 짜깁기에 불과한 이 말이 단어인가 문장인가. 제대로 이름을 짓는다면 우리 바둑이라 해야 옳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의 고대의 바둑이 흑백이 각각 8개씩 알을 배치하고 두는 식의 바둑만 있었는지도 불분명하다.

지금 남아있는 순장 바둑의 기보들은 대체적으로 19세기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근거로 조선 고려 삼국시대의 바둑의 형태를 유추할 수는 있겠으나 특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고려말 목은 이색이 쓴 기기(記碁)나 조선실록에 보이는 바둑의 형태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들 중에서 바둑돌을 배열하고 시작하는 단서가 보이지 않는다.

둥근 바둑알은 하늘을 닮아 있고 네모난 판은 땅을 닮아 정지해 있네. 바둑알 차례(下碁)로 놓으면서 대국이 시작되면 여린 몸집이면서 맹렬한 기세로 돌격하니...

이색이 본 바둑 두는 모습은 하기(순차적으로)다. 이미 장기처럼 기물을 배치하고 두는 것이라면 배자(配子)로 나타나야 한다. 이 당시 중국의 바둑이 대각선 방향으로 흑백이 두 화점을 점거한 상태에서 두어진 것으로 볼 때 목은이 본 바둑은 16개의 바둑알을 미리 놓고 두는 바둑은 아니었다.

더구나 고려는 물론 신라까지도 중국과 빈번한 교류가 있었고 특히 바둑의 교류전을 벌인 대목이 많은 것으로 볼 때 그렇다. 동시에 삼국시대 고려시대의 것으로 고증된 바둑판이 15줄 17줄 19줄 21줄 등으로 다양한 것은 아직 우리가 우리의 바둑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는 숙제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바둑이 세계 최강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금만 바둑의 내적으로 들어가 보면 너무나도 부실한 이론적 토대에 놀라게 된다. 이런 점에서 바둑의 수법을 뒷받침하는 이론의 정비 또한 시급하다고 본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 고유의 순장 바둑이라는 바둑이 있었다고 믿어 왔다. 화점이 있고 흑백 16곳을 요소를 차지하고 두는 형식의 고유한 바둑이 우리나라에 두어져 왔고 우리는 그 바둑을 순장 바둑이라 인식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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