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86회 13장 파국(破局) (2)
[연재소설 청룡도] 86회 13장 파국(破局) (2)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2.0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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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인은 어유야담에서 서평군과 신구지라는 바둑 고수 두 명을 소개하고 있다. 모두 중국의 바둑고사를 패러디한 야사 쪽의 에피소드라 진정성도 사실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김철손(金哲孫)의 에피소드는 의미가있다.

유몽인은 어유야담(於于野談)의 저자로 유명하지만 육조의 판서를 두루 거친 행정가이자 정쟁으로 비운을 맞은 정치가다. 그는 수많은 기인기사(奇人奇事)를 한 권의 책으로 묶으며 예성강 엘레지를 살짝 비틀어 오늘에 전해준다.

- 바둑은 작은 재주지만 잘 두는 사람은 하루에도 천금을 번다. 전주 사람 김철손(金哲孫)이 있는데 바둑으로 최고였다. 그에게 아름다운 첩이 있는데 일본의 상인이 흑심을 품고 김철손에게 접근을 했다. 일본의 상인 또한 바둑의 고수였다.
그들은 바둑으로 금방 친해져 서슴없이 내기 바둑을 두었는데 처음에는 해와 달이 그려진 고급 말안장을 따며 기세를 올리던 김철손이 끝내는 패해 첩을 빼앗기는 지경에 이른다. 일본상인을 따라 일본에 간 첩은 김철손에게 원망의 노래를 지어 편지로 보내는데 내용은 이렇다.


전주사는 김철손

바둑으로 당할 자 없더니

천금의 여자를 왜놈의 배에 태웠다네

해와 별 그려진 말안장 바라보며

첩의 얼굴 떠올리고 있겠구나.

(全主地金哲孫/與人奕睹莫爲先/天金美姬載倭船/畵日畵星一鎧鞍/須替妾顔看)


유몽인은 서천령, 신구지, 안경무 등 바둑의 고수들을 기록하여 바둑사에 도움을 주기도 한 사람이지만 필자는 김철손이 더 반갑다. 바둑이 도박과 함께 유행하던 명나라시대 조선 또한 바둑과 도박이 어우러져 발전하고 있음을 유몽인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둑으로 하룻밤에 천금을 잃고 따던 시대, 김철손은 내기바둑에사랑하는 여인을 거는 무모함을 보여준다.

김철손은 16세기 조선에 유행하던 내기바둑을 증언하고있다. 고려사에 전하는 송도의 못난 사내의 사건을 재구성하여 조선에 적용시켜 보여준다. 조선의 바둑은 도박성이 가열되면서 한층 재미를 더하며 발전한다. 내기바둑은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 계속된다. 필자는 한국바둑사를 쓰면서 이 점을 실감했다.

바둑은 저녁시간이 되어도 오십여 수가 진행되고 있었다. 16점을 배치하고 두는 바둑인 탓에 바둑판의중요지점은 흑백돌로 가득했다.

"장점바둑은 너무 위험해서 재미가 있단 말이에요?"

우군칙이 장막 안에서 시시각각 전해져오는 기보(碁譜)를 재현한 바둑판을 보며 말했다. 그가 말하는 장점바둑은 '순장'바둑을 말한다.

"바둑은 장점바둑이 아슬아슬하지."

홍경래가 장단을 쳤다. 선아는 아예 바둑판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아직은 누가 유리한지 모르겠는데요. 이 자리에서 패가 나고 이쪽도 패가 날 자리고 말이에요."

"장점바둑이 특히 패로 시작해 패로 끝난다는 말이 있잖아. 처음부터 싸우니 그럴 수밖에..."

홍경래가 장점바둑의 특성을 말했다. 이 대목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자. 순장바둑이란 용어에 대해. 우리는 순장바둑이 우리의 고유한 어떤 것인 줄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것이야말로 타당하지 않은 오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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