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79회 12장 춤추는 검계(劍契) (2)
[연재소설 청룡도] 79회 12장 춤추는 검계(劍契) (2)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1.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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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짜들의 패악질은 상상 초월이었다. '이옥'은 한양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던 검계의 일면을 기록한 적이 있다. 왈짜들이 떼를 지어 다니며 오부(五部)의 부잣집을 다니며 돈을 갈취하고 재물을 빼앗는다 했다. 그들의 패악은 죽은 시체를 메고 다니며 집안에 들여 놓고 공갈을 하는 정도까지 이르렀다.

이 대목에서 조선시대의 부랑아, 즉 암흑가를 연구한 한 학자는 조선의 암흑세계의 원조를 '향도계'로 보기도 한다. 향도계는 사람이 죽었을 때 장례식에서 상여를 메는 사람들의 모임을 말한다. 한양에서 상여를 메는 것도 일종의 이익사업일 때가 있었다.

이들의 규모와 영향력은 한성 오부(五部 ; 오늘날 區 개념)나 지방 관아에서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극성을 떨친다. 성대중(成大中)은 아현에 근거지를 둔 거지패들이 두목(패두)의 생일에 용호영의 악단장을 위협하여 군영의 악단을 생일잔치에 동원하고 있음을 고발한다.

성대중은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 패두도 있다고 했다. 이 여자 패두는 포청에서 자신의 부하들을 잡아가면 포교들을 찾아가 당당하게 협상을 하기도 한다. 돈을 달라면 돈을 줄 것이고 떡(몸)을 달라면 떡을 주겠다는 제안이다. 과연 검계의 여두목의 몸을 청할 포교가 있었을까 싶지만 이 시대 암흑가의 면모가 흥미로운 것은 분명하다.

성호 이익은 조선천지에 도적떼들이 차고 넘친다고 하고 있다. 그들은 길동 선생을 자처하며 협객을 운운하지만 조선에 협객은 없다고 했다. 조선에 협객이 없다는 이익의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협객을 자처했던 사람들은 여러 명 있다. 장길산이나 임꺽정 같은 인물들이다.
필자는 조선 중종 시대 활동했던 '미륵'을 장길산이나 임꺽정을 능가하는 인물로 파악한다. 미륵은 필자가 세상에 처음 소개한 사람이기도 하다. 소설 [동천홍]의 주인공이 미륵이었다.

미륵은 인천 김포의 검계의 패두로 중종반정에 참여해 반정 2등공신에 오른 인물이다. 미륵은 반정 1등공신에 책록된 박영문의 권유로 연산군을 실각시키는 작전에 수하들을 동원하고 공을 세운다. 물론 미륵은 반정 후 정치싸움에서 박영문과 함께 불귀의 객이 되는 비운을 맞는다. 토사구팽이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한다.

검계의 활동은 숙종 영조 시대에 극성을 떨친다. 영조말기 포도대장 장붕익의 활약이 조선 야사에 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계는 정조시대로 오면서 서강단, 채단, 폐사군단하는 공식적(?)인 단체로 진화하여 조정과 맞서는 지경에 이른다. 검계의 중요 타격 대상은 상인들이었다.

"형청은 뭐하는 거야?  저런 놈들을 그냥...?"

"호호, 아서라. 니가 가서 뭘 어쩌려고?"

오포장이 흥분을 하는 가희를 제지했다. 작은 골목을 끼고 끝없이 이어진 가시(街市)는 왈짜들의 마구잡이 행패로 쑥대밭이 되고 있었다.

"포장이 저런 꼴을 보고 가만히 있겠단 말이에요?"

"호호, 놔둬. 저놈들 행패가 마구잡이는 아니잖아. 부서지는 물건들은 교묘하게 피해가며 진상을 떨잖아?"

오포장의 눈은 예리했다. 왈짜들은 포목이나 소쿠리 등 집어 던져도 손상을 입지 않는 물건들만 골라 넘어트리고 집어 던지고 있었다. 거친 욕설과 과장한 행동이 상인들을 기를 죽일 뿐이었다.

"그럼... 위장을..."

"호호, 잔뜩 겁만 주는 게지. 사람들도 어디 부러질 정도로 패지는 않잖아?"

오포장의 말대로 왈짜들은 상인들을 죽일 듯하면서도 뒤로 넘어트리거나 엉덩이를 걷어차는 정도의 폭력을 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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