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78회/ 12장 춤추는 검계(劍契) (1)
[연재소설 청룡도] 78회/ 12장 춤추는 검계(劍契) (1)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1.16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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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 운산을 돌아본 오포장은 가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영변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영변은 적유령 산맥의 여맥이 박천과 영변을 지나가는 내륙이었다. 운산 박천 영변은 적유령 산맥과 '삭주'에 있는 계반령에서 발원한 대령강, 장수탄강, 계지천이 갈짓자로 흐르고 박천과 영변의 경계를 흘러 안주에서 만나는 사통팔달의 물길이 만든 계곡과 평야가 어우러져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환경을 이루고 있었다.

영변읍성 아래에는 영변장이 있었다. 안주의 남시에 못지않은 번화한 장이었다. 함경도는 상업의 고장이란 말처럼 곳곳에 큰 시장이 서고 있었다.

"엉? 저건...."

"검계 아닌가요?"

"호호, 맞네, 맞어."

오포장이 시장 입구에서 행패를 부리는 사내들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웃통을 벗은 사내들 대여섯이 시장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다. 조선천지에 퍼져 있는 검계의 행패였다.


장터마다 반드시 행패꾼이 있기 마련. 상인들에게는 승냥이 짓이나 호랑이 짓을 하는데 이들은 중국의 소패왕(小覇王)이나 같다. 이들은 싸전에서 말질과 되질하는 권한을 조종하고 저울과 자로 농간을 부린다. 창녀들을 사서 주막에 두고 소를 밀도살하여 고기를 판다.

술에 절어 살며 욕설을 입에 담고 남의 재물을 겁탈한다. 붉은 닟짝에 흰 눈창으로 독기를 내뿜으며 술독을 깨트려도 아무 말을 못한다. 수령들은 이들을 다스려야 한다. 별도의 염탐과 조사가 필요하다.

이런 자들은 큰칼을 씌우고 몽둥이로 살점이 뜯겨 나가도록 혼쭐을 내주어 다시는 이런 짓을 못하게 해야한다. 그렇게 하면 상인들은 길가에서 노래하고 백성은 기뻐하며 신명을 칭송하여 사방에 넘칠 것이다.

-목민심서


정약용은 지방관장들의 지침서라 할 수 있는 목민심서를 지으며 전국의 시장판에 기생하는 왈짜(曰字)들을 주목하고 있다. 왈짜는 건달패를 말하는 것으로 19세기 초로 오면 한양 평양 등 대도시 외에도 전 조선의 사회문제로 대두된다. 오포장이 서북기찰에 나선 1809년보다 1년 빠른 순조 8년에 평안도를 암행한 어사 '서능보'는 보고서인 '서계별단'에서 함경도 지역의 건달패들을 기록하고 있다.


평안도 관부가 재정이 풍부하고 상업이 활발한 틈을 타 파락호들이 자기 인척들 중 재산이 많은 자들을 골라 관에 보증을 세우고 재물을 빌려가 마음껏 탕진하고 변제치 않아 피해를 인척들이 떠안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서능보의 보고는 평안도 왈짜들이 시장을 갈취하는 갈취범의 차원이 아닌 백성들 중 부호들을 협박하여 관에서 환곡이나 대여금의 보증을 세우고 나몰라라 한다는 것이다. 서능보의 이 기록은 20세기 일본 야쿠자의 범죄 비즈니스로 통하는 신용금고 날리기(?) 수법의 원조격이다.

왈짜들은 어깨와 팔뚝 등에 모두 문신을 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내는 얼굴에 기다란 칼자국이 있고 눈매가 독하고 매서웠다.

"관의 세금은 겁나고 우리들 세금은 자장가로 들린다 이거지?"

칼자국이 포목점 상인의 멱살을 잡고 핏대를 올렸다. 웃통은 벗고 있었으나 비단바지에 가죽신으로 한껏 멋을 부린 왈짜였다.

"세금은 내지 않았습니까요?"

"언제?"

"지난 장날에요."

"호? 그럼 너는 지난 장날에 밥 먹으면 이번 장은 굶니? 앙? 굶어?"

"한번씩은 좀 봐 주면서...악!"

포목점 주인이 왈짜가 내지른 주먹을 얼굴에 맞고 뒤로 나자빠졌다. 그 순간 뒤에 있던 왈짜들이 난전으로 달려들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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