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77회/11장 신도(薪島)에 모이다 (7)
[연재소설 청룡도] 77회/11장 신도(薪島)에 모이다 (7)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1.1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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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응!"

"형님, 대마가 두 눈이 없네요. 살 길이 없어요."

국상전쟁(局上戰爭)은 흑대마의 몰살로 종국을 앞두고 있었다. 거칠고 사납게 몰아부친 백군(白軍)은 좌하에서 우상으로 몸을 비틀며 흑말을 완벽하게 포위하고 있었다. 귀로(歸路)는 없었다. 주변에 두 눈을 겨우 내고 살아있는 흑말과의 연결은 아예 차단되어 있었다.

자체로 두 눈을 내지 못하면 대마는 반상에서 몰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흑말은 피투성이의 몸으로 겨우겨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선아는 돌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홍경래와 우군칙이 볼 때 흑말은 한집을 확보한 상태에서 한두 곳에 반집 정도가 날 여지가 있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시간이 물흐르듯 흘렀다. 선아는 여전히 말없이 반상만 집중하고 있었다. 김밀수는 조금 여유가 있는 표정으로 반상과 선아를 힐끔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 아이 승부욕이 대단한데요?"

우군칙이 바둑판에서 시선을 거두고 담 밖으로 보이는 포구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을이 포구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탓에 바다와 포구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쉽게 던지지 않는다는 것은 투지가 있다는 거겠지. 그런데 저들은 뭐냐?"

홍경래가 포구쪽에서 걸어 올라오는 군졸들을 보고 물었다.

"형님, 보군들인 모양인데요. 저놈들 또 연회라도 벌인 모양이네요. 기녀들을 데리러 오는 것 같은데요?"

용천과 의주 사이에는 여러 개의 보(堡)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군졸들이 십여 명씩 근무를 하고 있었고 그들을 관리하는 군관들과 주변 상급 지휘관이 수시로 모여 여흥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이 일이었다. 이 시대 조선은 조정에서부터 변방에 이르기까지 술과 음악 그리고 기녀들을 통한 성적 타락이 극한점에 달해있었다. 문인 강백(1690-1777)은 변방의 으스스함과 관원들의 타락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서생들은 모두 분개하여

일어나 앉아 홀로 운다.

나라의 힘은 약하기 그지없고

변방의 근심은 밤중에 일어나는데

봉화연기 계주까지 통하거늘

사냥하는 불 관하에 가득해라

듣건대 운흥관으로는

청총말을 대령한 기생들 가득 몰려갔다 하네.


강백은 용천과 의주에 유배를 와 이런 시를 남긴다. 병자호란의 파멸적 전란을 겪고 나서 아직도 불안하기만 한 국경지역의 살풍경이 담겨 있다. 청국쪽의 계주 관하(요동지역 25참 중 하나) 주변에 군마의 이동과 봉화의 긴장감이 살벌한 데도 조선의 장교들은 운흥관에 기생들을 모아 놓고 풍악과 주색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군의 기강해이는 영정조 시대를 거쳐 순조시대로 오면 고질병이 된다. 고질병은 치료법도 없었다.

"저놈들 이리 오는 거 아냐?"

"형님, 그렇겠는데요. 기방에서 기녀들을 잡아다 노는 것을 장난으로 아는 놈들이니까요. 이거 일이 이상하게 꼬이는데요."

우군칙이 홍경래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오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맞는 말이었다. 우군칙은 국경의 보군들과 실랑이를 벌일 일이 걱정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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