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74회/11장 신도(薪島)에 모이다 (4)
[연재소설 청룡도] 74회/11장 신도(薪島)에 모이다 (4)
  • 이은호 작
  • 승인 2020.01.07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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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윤이는 특이한 여자였다. 그녀는 양인의 신분에서 스스로 기녀가 된 여자였다. 이유는 굶어죽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시골 양반에게 시집을 가 남편과 일찍 사별을 한 후 그녀가 생활 방편으로 택한 것이 기녀였다. 그녀는 뛰어난 용모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우군칙과 뜻이 맞아 홍단에 들어온 여자였다. 소문은 그녀가 우군칙의 첩이라고도 했다.

"형님, 김박혁이 이길 수 있을까요?"

"믿어보자고, 눈빛이 이길 수 있다 말하더군, 희저형님도 자신 있어 하시고."

홍경래와 우군칙은 포구 마을 끝에 있는 운이네 기방으로 들어갔다. 삼십여 호의 민가가 게딱지처럼 붙어 있는 포구 마을이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국경 파수를 보는 군인들과 무상으로 국경과 바다를 넘나드는 상인들로 인해 마을 경기도 풍족했다.

"어찌되었어?"

홍경래가 기방에 여장을 풀고 조금 후 뒤를 따라들어오는 춘대를 보고 말했다.

"약을 먹이고 안정을 취하고 있는 중입니다. 곧 회복이 될 거랍니다."

"알았어. 보소? 윤이네?"

홍경래가 춘대에게 선아와 김밀수의 상태를 듣고 이것저것 챙기고 있는 주인 윤이네를 불렀다. 윤이네는 수십 칸이 넘는 집에 일하는 기생 서너 명에 허드렛일을 돕는 일꾼까지 있는 큰집이었다.

"부르셨는지요?"

"그렇소, 나는 당신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같은 천민 상것들은 반상의 차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지만, 양반 신분으로 그것도 여자가 반상의 차별을 깨트린 것은 감동이오."

홍경래가 양반과 상민 사이에 있는 간격을 말했다. 이 시대 양반으로 홍경래와 같은 말을 한 사람이 한명 있다. 김려(1766-1821)는 이 시대에 평등과 계급타파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었다. 김려는 김조순과 친구로 지낸 문인이다. 김려는 '장파총'이란 몰락 양반과 한 백정의 만남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주인이 이 말을 듣고

머리숙여 절하고 앉더니

한솥밥이야 먹을 수 있겠지만

같은 자리에 앉는 것은 죽을 죄이지요.

천지신명이 눈을 부라리는데

하늘이 두려운 일 아닙니까?

허허 웃으며 파총이 말했지.

공손도 지나치면 비례인 법,

뜻 맞으면 친구고

정 깊으면 친구 아닌지요.

어찌 하늘의 뜻이

사람 사이에 계급을 나누는 것이겠나요.

신분의 차이가 어쩐 일인가요.

김려는 수위천공의이자한계급(誰謂天公意以玆限級階)이라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우리가 우러러 추앙하는 성군 정조도, 대학자 정약용도 생각하지 못했던 인권의식이다. 사회혁명의 주장인 것이다. 김려는 이곳에서 한발 더 나간다. 등질경하유(等秩更何有) 신분의 차이가 천지간에 어디에 근거가 있는가 묻고 있는 것이다.

상민은 양반과 한 자리에 앉을 수 없고 함께 밥도 먹을 수 없던 시대, 거주공간과 사고의 방식마저 자연스럽던 시대에, 김려나 윤이네 같은 사람은 기적같은 인물들이다.

"입이 하늘이고 사는 것이 성인의 도 아닌지요? 나머지는 다 쓰잘데 없는 것들...그럼."

윤이네가 홍경래에게 목례를 올리고 아랫 사람들을 독려하며 바쁘게 돌아다녔다. 십여 명의 홍경래 식구들과 뱃사람들 그리고 허낙생이 몰고올 사람들까지 수발을 하려면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허? 볼수록 대단한 여자야."

"그렇고 말고요, 형님, 용천은 저 여자가 패두입니다."

우군칙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윤이네를 포섭한 것이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이곳은 어떤가?"

"형님댁 말입니까?"

"뭐야?"

홍경래가 갑자기 정색을 했다. 용천은 그의 고향이었고 포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처와 자식들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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