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73회/ 11장 신도(薪島)에 모이다 (3)
[연재소설 청룡도] 73회/ 11장 신도(薪島)에 모이다 (3)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1.0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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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 일행이 해로를 이용하여 도착한 곳은 용천이었다. 용천은 의주와 인접하여 서해와 접하고 있는 국경지역이고 홍경래가 태어난 고향이기도 했다. 포구(浦口)에는 우군칙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형님 !"

"그래, 얼굴이 좋아졌어. 요즘 작은댁을 들였다고?"

"아이고 형님, 무슨 첩을 들입니까요? 다 헛소문입니다요."

"능력있으면 첩도 들여야지. 자, 다들 내려."

홍경래는 우군칙의 손을 잡아주고 말했다. 배에서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내렸다. 춘대의 수하들은 두 사람을 등에 업고 내리고 있었다. 선아와 김밀수였다. 두 사람은 배의 선실에 누워 곤죽이 되어 있었다. 극심한 뱃멀미에 시달린 탓이다.

"두 사람은 포구 의원에 데려가. 멀미가 심했을 거야. 아이고 선아 봐라?"

홍경래는 식은땀으로 목욕을 하고 있는 선아의 얼굴을 손으로 훔쳐 주며 말했다.김밀수는 선아보다 한술 더 뜨고 있었다. 아예 지렁이처럼 늘어져 있었고 입에는 흰거품까지 물고 있었다.

"아이쿠, 이거 해보지도 못하고 또 지는 거 아닙니까?"

우군칙이 사색이 되어 말했다. 신도회합은 열흘이나 시간 여유가 있었다. 그 안에 정주 허낙생과 기박(碁搏)이 용천에서 약속되어 있었다. 담배 오백 근이 아니라 서너 배가 추가된 큰 판이었다.

"이틀이나 시간이 있잖아. 도보로 오는 것보다 해로가 빠르기에 이리 온 거야. 그건 그렇고 저 사람들 한가하군?"

홍경래가 포구의 공터에서 공을 차고있는 사람들을 보고 말했다. 모두 어른들이었다. 그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열심히 공을 차고 있었다. 태반이 웃통을 벗고 있었다.

축국장이 시장 민강에 많으니

장사치들 손님을 맞아 주위를 맴돌고

원앙 같은 자세로 걸어다니는 걸음은

시장판 왈짜패들도 두렵지 않네.

홍석모(1781-1857)가 동국세시기에서 증언하는 이 시대의 조선의 중요 오락 중 하나가 축국(蹴鞠)이다. 홍석모는 장정들이 축국을 즐기는데 큰 탄환만한 공에 꿩의 깃털을 꼽아 두 사람이 서로 발로 차며 주고 받는데 땅에 떨어트리지 않는 것이 기술이다 말한다. 홍석모는 한양 시골을 가리지 않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공터가 없을 정도로 축국이 유행한다 기록하고 있다.

"하하 형님, 실기장죽(室碁場蹴) 아닙니까요? 방에서는 바둑이 마당에서는 축국 아닙니까? 저 모습이 이상한 거 아니지요."

"숙소는 어디로 정했나?"

"가장 크고 깨끗한 집으로 했습니다. 윤이(尹李) 집으로요."

"윤이네?"

"동지라서가 아니라 기박을 벌이기에 그 집만한 곳도 없습니다."

윤이는 용천의 기방의 주인으로 우군칙의 포섭으로 들어온 여자였다. 그녀는 담대하고 대가 있는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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