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라... 어쨌든 경치는 좋군. 저 넓은 들판을 봐. 안주가 유달리 커 보이는군."
홍경래가 멀리 좌측으로 보이는 안주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주는 안주평야의 중심에 있는 고을이다.
"조선북방 방어의 거점 아니겠습니까?"
장봉사가 장단을 쳤다.
"그래, 맞아. 우리가 거사를 일으켰을 때 첫번째 탈취해야할 목표가 저곳이지. 안주만 쉽게 탈취한다면 반쯤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어."
홍경래는 한 손을 들고 웅변하듯 말했다. 어금니를 깨문 탓에 목소리마저 비장했다.
안주는 홍경래의 말대로 조선북방의 가장 중요한 거점 중 하나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북방, 즉 서북방어는 압록강과 인접한 강변 7읍(강계, 위원, 이산, 벽동, 창성, 삭주, 의주)을 연결하는 방어선이 무너진 후 북방방어는 와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청나라에 항복을 한 이후 이 강변 7읍의 군사시설의 재건이나 군대의 집결이 원천적으로 불허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어쩔 수 없이 강변 7읍의 국경에 감시초소인 보(堡)와 감시 군인 약간만을 두고 국경을 경비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북병이 있는 의주마저 지휘부만 있는 군대를 유지해야 할 정도였다.
이런 현실에서 조선의 북방 방어는 청천강까지 후퇴하여 안주, 영변에 거점을 두고 평양이 지원하는 형태의 방어선을 구축하게 된다. 서북지역의 군사력은 안주 영변 평양에 집결하게 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청나라와의 감시관계가 해소되는, 숙종 영조 시대에 와 북방지역의 무너진 성곽을 보수하고 약간이나마 군대를 투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영조 30년 타림분지에서 일어난 준가르(jungh)와 청이 전쟁을 하게 되는 틈을 타 조선은 준가르의 공격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평안도 종심방어 계획을 세우고 안주 영변 평양 방어선을 구축한다. 이때 안주성이 대대적으로 축조된다. 안주는 북으로 청천강이 서쪽으로 흐르며 발전한 유역평야지대다. 안주평야는 곡창지대와 관서 3로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로 특히 상업이 발달하여 안주의 남시(南市)는 한양의 송파장을 능가할 정도였다.
안주성 축조는 남시를 성 안으로 편입시키고 성 북쪽을 흐르다 물길이 바뀌어 자연 해자의 기능을 상실한 청천강의 물길을 다시 성 밑으로 돌리는 엄청난 공역이었다. 영조 10년에서 30년 시간이 걸린 이 공사는 끝내 안주성을 철옹성으로 만든다. 북문인 신흥문에서 안주 부근의 산인 천제봉을 지나 남장대에 이르는 성은 1800보에 높이가 튼튼하기가 이를 데 없는 성이 완성된 것이다.
특히 이 시기부터 안주에는 유격부대인 보마군이 상주하며 병마사가 있는 영변병영과 긴밀한 협조를 하면서 조선북방의 명실상부한 중심 도시가 된다.
"그래서 안주에 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내부에 가장 많은 동지들을 모았지 않습니까?"
장봉사가 말했다. 군사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장봉사도 안주의 공취가 거사의 첫번째 과제임을 잘 알고 있었다.
"동지들은 다 모이겠지?"
"그럴겁니다. 이번 회합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들 알 테니까요."
"그렇겠지. 그리고 말일쎄 백경한 일은 어찌 되고 있나?"
홍경래가 얼마전에 있었던 백경한 사건을 물었다.
"정주관아에서 움직이고는 있습니다만 별다른 단서를 못찾고 흐지부지되는 듯합니다."
"하나 하나 잘 챙겨야 돼. 천려일실이란 말이 있어. 천 가지를 잘해도 한 가지를 빠트려 일을 도로로 만든다 그 말이야."
홍경래가 장봉사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어염선은 청천강 하류를 벗어나 바다로 진입하고 있었다. 바다는 넓고 거칠었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 떼들이 하얗게 배 위로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