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68회 10장 양산박(5)
[연재소설 청룡도] 68회 10장 양산박(5)
  • 이 은호 작
  • 승인 2019.12.19 17: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학규는 성호학파의 마지막 제자다.
서학교도로 몰려 24년간 유배생활을 했고 다산 정약용과의 서신 왕래 등으로 유배지의 고통을 이기며 청룡도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이학규는 스승 이가환을 통해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었고 정조까지도 그를 알고 있을 정도였다.
이학규는 이 시대를 여러 부분에서 증언한다.

세상은 언제나 가난하다. 세상은 역사 이래 한번도 부자였던 적이 없었다.
지상낙원에 가장 근접했던 요순시대마저 가난은 피할 수 없었다.
요임금의 집무실이 띠풀로 지은 작은 집에 불과했다.

조선시대의 성군이라 부리는 세종시대에도 백성들의 삶은 비참했다.
가뭄과 홍수는 세종시대라 하여 예외가 아니었고 유리걸식하는 백성들은 한양의 성 밑에서 얼어죽고는 했다.
요순과 세종이 성군이라 함은 위정자의 덕목 때문일 것이다.

세종이나 성종 등 성군으로 불리는 왕들은 자신들의 권도를 백성들을 향했고 지속적으로 표현했다. 그것은 위정자가 갖는 백성에 대한 관심이다.
이학규가 증언하는 순조시대의 백성들의 삶도 세종 성종 시절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순조는 세종과 성종 등이 갖고 있던 백성을 향한 마음이 없었다.
왕은 어렸고 식견이 짧았다. 순조만이 아니었다.
순조의 부왕 정조도 그 시대 가장 유망한 학자였던 정약용까지도 백성을 향한 마음에 한계가 있었다.

- 임금 신하 주인 노비의 관계는 하늘의 이치로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君臣奴主斯有名分確若天地不可階升)

이 말의 출처는 목민심서다. 사족이 필요 없는 말이다.
당대의 학자였던 다산선생마저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존재일 뿐이다.

다산은 자식들에게 숱한 편지를 통해 천민상민의 길로 빠져서는 안된다 경계를 한다.
망한 집안으로 살길은 학문을 열심히 닦아 청족(淸族)들과 혼교를 맺는 길밖에 달리 길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한양 근방을 떠나서는 안된다고 한다.

다산은 양반사대부는 덕과 문이 피어나는 왕의 근방에 살아야 한다고 한다.
한양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금수와 비슷한 백성들은 관장들이 내려와 잘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목민심서는 짐승(?)과 같은 아전 서리 상민 노비들을 관장들이 잘 가르치는 법을 쓴 책이다.
17~18세기 이 땅의 여명의 빛이었던 정조나 다산 정약용도 왕권(王權)을 일반 백성들에게 온전히 돌려줘야만 비로소 세상이 개혁되고 변화한다는 서구적 의미의 시민정신과는 동떨어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조는 도와 정(政)이 성인인 자신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었다.
다산은 이에 보조를 맞추어 덕과 문이 왕으로부터 나온다 철석같이 믿던 사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