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62회 9장 역간계 逆間計(6)
[연재소설 청룡도] 62회 9장 역간계 逆間計(6)
  • 이 은호 작
  • 승인 2019.12.0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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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오가 폐사지 청룡사에서 선(禪)의 한가지를 붙잡고 애를 쓰고 있을 때 조선의 선불교는 백파와 초의가 수맥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백파의 저서 '산문수경'이 그것인데 필자는 그 책 한권으로 백파가 선의 종사(宗師)가 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백파는 선문수경(禪文手鏡)에서 임제삼구(臨濟三句)가 선의 모든 것이란 주장을 전개한다(佛心淸淨法心光明道處處無疑淨光是一也). 모두 이름뿐이고 본래는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구에 깨우치면 조사가 되고, 2구에 깨우치면 인천사(人天師)가 되고, 3구에 깨우치면 제 한몸도 건사치 못한다는 임제의 교시에 치우친 백파의 선문수경은 백파와 추사 김정희 간의 선논쟁으로 비화하여 유명해진다.

추사 김정희의 유명세에 힘입어 백파의 면모가 함께 유명해진 것이다. 특히 어느날 불쑥 불교 잡지에 소개된 백파가 추사에게 보냈다는 '김참판답서'는 백파를 한껏 유명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김참판답서는 원문이 공개되지 않은 미스터리한 문헌(?)이다. 조선후기 선불교는 이렇듯 자료 부족에 허덕인다. 선의 종사라 말하면서 왜 종사인지를 말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선아야 바둑이 두고 싶으냐?”
홍경래가 바둑판 앞에 앉아 떨어지지 않는 선아를 보고 말했다.

“아뇨. 그냥...”
“하하. 그래. 산채로 가면 한수 하자꾸나. 만오?”
홍경래가 선아를 다독이고 만오를 불렀다. 선아는 바둑판 위에 흑백돌을 주루룩 늘어놓았다.

“말씀하시지요?”
“불교 쪽은 어찌 되어가고 있나?”
“애는 쓰고 있습니다마는 사찰들이 워낙 쑥대밭이 되어 여의치가 않습니다.”
“하하 한때는 승영(僧營)을 설치하고 남았던 승려들이 그리 되었다니...”
홍경래는 혀를 차며 창고로 사용하는 대웅전으로 갔다.

조선의 승군은 저력이 있는 부대였다. 그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국난이 있을 때마다 군대를 만들어 나라에 충과 의를 다했다. 승군은 공병과 군수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살생을 금하는 불법에 따라 직접 전투를 피한 차선책으로 택한 분야였다.

승군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시로 성역조성이나 능묘공사에 동원되었다. 녹봉이나 식량보급도 없었다. 알아서 먹고 일만 하라는 식이었다. 중종시대 능묘 조성에 동원된 승려 수백 명이 동사 및 아사를 했을 때도 조정은 다른 지방의 승려를 차출 대체하고는 끝이었다. 이런 풍토 아래서 불교가 꽃을 피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속에서 그나마 백파나 초의 같은 승려가 배출된 것은 화중지연(火中之蓮)이다. 불속에 서 핀 연꽃인 것이다.

“장군,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만오가 홍경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닐쎄. 그것이 어찌 만오의 책임인가?”
홍경래는 대웅전 안을 이리저리 살폈다. 거미줄과 치우지 않은 쓰레기 등 금방이라도 귀신이라도 나올 듯 살풍경했다.

“이것이 조총이고 저건 화살이 들어 있습니다.”
만오가 쓰레기 등으로 위장을 해놓은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활은 이곳에 없지?”
“습기와 상극인지라 햇빛을 잘 받는 곳에 두었습니다."
조선의 활은 세계 최강의 활이다. 사거리와 관통 능력에서 중국이나 일본 활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 활은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그것은 우중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약점이다. 습기를 먹으면 활대와 시위가 풀어져 살상을 할 만한 타격을 가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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