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60호 9장 역간계 逆間計 (4)
[연재소설 청룡도 60호 9장 역간계 逆間計 (4)
  • 이 은호 작
  • 승인 2019.11.28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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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잘 있으셨나?”
홍경래는 반승반속(半僧半俗)인 만오의 손을 잡고 말했다. 청룡사는 이미 폐사가 된 지 오래였다. 청룡사는 홍단이 창고로 사용하고 있었고 홍경래의 무리 중에 전임 승려였던 만오가 폐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럼요. 장군께서도 좋아 보이시네요.”
“그런가? 하하 자 안으로 들어가세.”
홍경래는 만오를 군종(軍宗)으로 대우했기에 하대를 하지 않았다. 군대를 일으켰을 때 병영의 사기 진작을 위해 군종은 필요한 존재였다. 더구나 만오는 좌선(坐禪)으로 불법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 학승이었다. 만오가 사용하는 방안 벽에는 붓으로 쓴 선(禪)이 선명했다.

“선이라? 저걸 보면 불법을 알 수 있다는 말인가?”
“마음 머문 곳, 그곳이 부처 계신 곳이지요.”
“마음이 머문 곳이 부처가 계신 곳이라고? 하하 그 말 한번 요설이군. 선아야 인사 드리거라.”
홍경래는 방안으로 선아를 불러들이고 만오에게 인사를 시켰다. 만오의 속명은 '유인태'. 승려 출신으로 장용영의 둔전이 설치되었던 박천으로 강제 징집되어 군역을 살다가 장용영이 해산되면서 홍단에 들어온 인물이었다.
홍단 안에는 장용영 박천 둔전에 근무하던 군정(장졸)이 십여 명이 더 있었다. 장용영 출신들은 홍경래부대의 군사 조련 경험이 있는 경력자들이라 할 수 있다.

“오? 이 아이가 장군께서 서기로 쓰시고자 한다는 그 아인지요?”
“그렇다네. 절에 찾아온 사람은 없었나?”
“폐사를 찾아올 사람이 있겠는지요? 물건들은 잘 있습니다.”
만오가 말하는 물건은 군수품을 말하는 것이다. 홍경래는 자금이 생길 때마다 병장기를 사 모아 청룡사의 한 창고 안에 숨겨오고 있었다.
순조 초기 조선 천지의 사찰은 그야말로 절간(?)이 되어 있었다. 절간이란 말은 불교를 천대하고 하대하는 유교가 만들어낸 말이다. 유교는 건국 초부터 불교를 탄압했고 영정조 시대에 와서는 승려를 '치고' 사찰을 '절간'으로 부르는 지경에 달해 있었다.
정조 5년 지방 장관인 '조시준'은 이유 없이 불교에 가하는 박대를 정조에게 건의한다.
도내(道內) 의승(義僧)의 폐단입니다. 승역(僧役)이 치우치게 고통스러운 것이 평민(平民)보다도 더 극심하지만, 그들의 자취가 공문(公門)과 멀기 때문에 품은 마음이 있어도 신리(伸理)할 길이 없습니다.

대저 양역(良役)의 감포(減布)가 있은 이후 민인(民人) 가운데 산문(山門)에 자취를 의탁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어쩌다 하나 있는 정도이기 때문에 이름난 거찰(巨刹)도 남김없이 잔패(殘敗)되었습니다.
이런 때문에 여러 영읍(營邑)이 책응(策應)하는 신역(身役)은 비록 혹 편의에 따라 고치고 감하고 하였습니다만, 의승의 번전(番錢)에 이르러서는 감히 변통할 수가 없습니다.
대저 남한(南漢)의 의승이 161명, 북한(北漢)의 의승이 86명, 병조에 예속된 의승이 5명인데, 모두 합쳐 252명입니다. 이들 매 명당(每名當) 방번전(防番錢)이 22냥씩으로 모두 합치면 5천 544냥인데 이를 열읍(列邑)의 각사(各寺)에 분배(分排)시켜 징봉(徵捧)하여 올려 보내게 하고 있습니다.
대저 양정(良丁)의 신역(身役)도 1필(疋)씩을 넘지 않고 악공(樂工)·장보(匠保)의 부류도 신역의 다소(多少)가 비록 혹 한결같지 않으나 어찌 의승 한 명의 번전(番錢)이 22냥이나 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런 연유로 보잘 것없이 쇠잔해진 치도(緇徒)들이 바리때를 버리고 머리를 기르고서 기꺼이 환속(還俗)하기 때문에, 백승(百僧)의 신역이 십승(十僧)에게로 귀결되고 십사(十寺)의 신역이 일사(一寺)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혹 두어 명의 가난한 중이 하나의 초암(草菴)을 지키고 있어도 또한 1, 2명의 번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탓으로 사전(寺田)과 불기(佛器)가 이미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조선실록)
조시준은 승려들에게 병역과 부역을 가하고 보너스로 세역까지 가하는 정책을 말하고 있다. 한절의 승려들이 삼역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면 연좌를 걸어 남아있는 승려들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하여 끝내 온 조선안의 모든 사찰을 텅 비게 만들었다는 말인 것이다.
이 말에 정조는 고개만 끄덕이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조선의 불교와 승려들에 대한 대책은 그야말로 무대책에 이율배반이다.

“특히 화약을 잘 간수해야 하네.”
홍경래가 만오의 귀에 대고 주의를 주었다.

“그럼요. 습기가 차지 않도록 특별히 잘 간수하고 있습니다.”
“자네만 믿네. 그래 나홀로 좌선을 오래 했으니 자네 부처가 되었겠군?”
“부처요?"
"마음이 곧 부처라면서?”
홍경래가 만오가 주는 차를 한잔 받아 마시며 물었다. 방안에는 다기와 바둑판이 하나 놓여 있었다. 선아가 바둑판 앞에서 바둑알을 몇 개 꺼내 늘어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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