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45회 7장 백경한 사건(3)
[연재소설 청룡도] 45회 7장 백경한 사건(3)
  • 이 은호 작
  • 승인 2019.10.24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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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다.
홍경래와 이희저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했다. 김창시는 얼굴이 백지장이 되어 망연자실했다. 백경한은 요지부동이었다. 굳게 다문 입 그리고 질끈 감은 눈 사이로 굵은 주름이 뚜렷했다.
“춘대, 이 자를 끌어내어 결단하라.”
홍경래는 춘대를 불러 명을 내렸다. 이희저는 두 눈을 감고 침묵을 유지했고 김창시는 온몸을 떨며 백경한의 곁으로 가 손을 잡았다.

“친구 한번만 더 생각을 해 주게나? 친구를 죽이는 친구가 있기를 바라나?”
“자네는 나의 친구가 아닐쎄. 그러니 불편해 하지 말게. 가는 길이 다르기에 친구가 아닌 게야.”
“경한이?”
“끄응.”
백경한은 춘대의 손에 끌려 나가며 신음을 토했다. 김창시가 그들의 뒤를 따라 나갔고 홍경래와 이희저 두 사람은 방문을 닫고 앉아 탄식을 했다.

“아우, 공자의 말이 생각나는군.”
“공자의 말이요?”
“반행동착(反行同捉). 가는 길은 다르지만 도착할 곳은 같다.”
“공맹이야 입만 살아 있는 것이지만 말인즉슨 그럴 듯하군요.”
“공맹이 성찬(盛餐)으로 욕을 먹기는 하지만 그게 어디 그 분들의 잘못인가? 두 분을 이용하는 인간들의 잘못이지.”
“술 한잔 했으면 좋겠군요.”
홍경래는 술을 청했고 이희저는 밖에 술을 가져오도록 조치를 했다. 결론적으로 이날 백경한은 이희저의 집이 있는 가산의 한 야산에서 죽는다. 홍경래는 백경한을 의인으로 여기고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 준다.

이 대목은 복수의 기록에서 발견된다. 홍경래는 전쟁 중에도 또 다른 인물인 백경한(白慶翰)을 만난다. 그 자는 관원으로 진중에 사신으로 찾아와 항복을 권유하다 죽게 된다. 그는 그 일로 난이 끝나고 호조판서를 추증받기도 한다.
이 사건은 홍경래가 난을 준비하며 얼마나 치밀하고 치열했는지를 나타내는 일화다. 그리고 난의 주모자이자 책임자로 홍경래 자신이 사람을 구별하고 아끼는 마음을 볼 수 있다.
술자리는 오래 갔다.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자리였다. 아무 말이 없었다. 깊은 밤이 자니고 새벽이 밀어닥치고 있었고 방안에는 밀랍으로 만든 매화분이 여러 점 있었다. 이희저의 고상한 취미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진짜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진짜 행세를 한다네.”
이희저가 홍경래의 시선이 매화분에 가 있자 말했다. 매화는 조선의 선비들의 사랑과 애호를 받는 꽃이었다.

퇴계 이황은 매화를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차를 끓이고자 당신을 가까이 한 것 아니지.(非綠和鼎得君宜)
다만 맑은 향기를 사랑했던 것이네.(酷愛淸芬自泳思)
이제야 약조를 위해 돌아 왔으니.(今我己能赴約)
좋은날 지났다고 미워하지 마소.(不應嫌負明時)

조선 선비들의 매화 사랑은 급기야 밀랍으로 만든 모조품의 유행을 가져 왔고, 이덕무는 밀랍 매화 만드는 법이란 책까지 쓸 정도로 당대의 사치품이었다. 박지원은 이덕무의 책을 보고 밀랍매화를 만들어 스스로 자랑스러웠던지 이덕무에게 자신의 작품을 얼마에 사겠냐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아뇨, 형님, 저 가짜가 더 진짜 같군요. 그러고 보니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는 것이 부질없는 것 같네요.”
“백경한 일은 잊어야 하지 어쩌겠나? 아깝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더 큰 일을 위한 골육지책 아닌가?”
“형님, 세상은 넓어도 인재는 적다더니 그렇지도 않군요. 저렇게 가까운 곳에 협객이 있지 않습니까?”
홍경래가 자작으로 술 한잔을 더 따라 마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를 맞추어 김창시와 춘대 등이 방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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