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역사칼럼] 천년전 개봉의 한 사내를 기억하며
[충청 역사칼럼] 천년전 개봉의 한 사내를 기억하며
  • 이 청 논설실장
  • 승인 2019.10.20 17: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남투데이/ 이청  논설실장] 김용국 선생의 한국위기사를 다시 꺼내 본다. 선생은 현현기경의 결집의 모양이 송나라를 거쳐 원나라 말 완성되었다 하면서 그 증거로 기경 13편을 든다. 장의(張疑)가 지었다는  기경 13편은 송나라시대 출판된 망우청락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기경 13편이 현현기경에 다시 실려 있고, 망우청락집에 있는 총37개의 난이도 높은 사활(珍瓏) 중 27개가 현현기경에 고스란히 재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김용국의 말이 설득력이 있다.

사실 현현기경 서문을 쓴 우집도 안천장 엄덕보가 현현기경을 편찬할 때 자신들의 집안에 내려오는 자료(비급)를 망라했다 했으니 김용국의 말은 팩트에 가깝다 할 것이다. 기경 13편 중 명수(名數)가 있는데 이 편의 작가가 서현(徐鉉 917-992)이고 보면 기경 13편도 장의의 작품이 아니라 장의가 여러 자료를 취합하여 한권의 책으로 만들었다가 다시 이 자료가 ‘망우청락집’과 ‘현현기경’에 전재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서현은 문자학자로 허신이 지은 설문해자를 교정한 일급 학자다. 서현은 바둑에도 관심이 많아 반상의 전술과 용어를 정리하여 ‘위기의례’와 ‘기세’  ‘금곡원국보(局譜)’ 등의 바둑 저서를 냈다.  서현은 반상의 용어와 바둑판의 각 위치 그리고 기보를 작성키 위한 방법을 궁리했고 사활의 다른 이름인 ‘진롱’이란 말도 그가 처음 기록한 것으로 믿어진다. 
  鬆 (소나무 송, 더벅머리 송 松)  慢也 棋家取其珍瓏透空疏邇不漏之謂也.

서현은 반상에서 전개되는 착수가 반복되는 장면의 한 장면을 ‘송’이라 하고 槃과 盤이 盤逼과 같은 말이라고 한다. 서현은 이런 방법으로 반상언어 32가지를 정리한다. 이 과정에 나온 행마는 바둑의 용어를 떠나 세상사의 한 덕목을 지향하는 말로 차용되어 쓰이기도 한다.

행마는 저포(著捕)에서 나와 바둑으로 들어와 바둑의 용어로 정착한 것이기는 하나 중국 장기나 조선 장기의 옛문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지는 용어이기도 하다. 서현은 행마를 이렇게 말한다.
행은 움직임이다. 돌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 행으로 (상대)로 인해 돌이 끊어지는 일이 없게 하는 움직임이다. (行行也. 連子而下曰行 使有粘連不斷之結也.)
毅提也 棋死而結局日毅 旣毅而隨手日復毅俗不謂之提 見.
서현은 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설문해자는 毅 妄怒也日有決也라 하지만 서현은 반상에서 毅를 이렇게 차용하여 사용한다.
반상의 돌의 움직임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문용직은 [바둑의 발견]과 여타 저술에서 반상언어에 대한 많은 고민을 토로한다. 그런데 천년 전 바둑의 용어가 확실치 않을 때 문언문(文言文)으로 반상언어를 정립하려한 학자가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현은 당대의 최고 학자다. 지금 전해오는 설문해자는 온전한 서현의 공로다. 후한시대 허신이 지은 설문해자의 원형은 사라졌고 대신 서현이 설문해자를 교주한 저본이 남아 훗날 단옥재(段玉裁) 같은 후학을 만나 일류의 문화유산으로 남는다.

그러고 보면 현현기경이나 망우청락집은 중국 고대바둑의 결정판으로 수많은 유무명인의 열과 성이 녹아 있는 결과물이다. 현현기경 속에 고대 문자학자 서현의 메세지가 살아있음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나? 서현이 반상언어를 생각하고 立. 毅. 刹. 刺. 勒. 飛.大飛하며 머리를 싸매는 그 장면이 아스라하다. 

서현이 992년에 죽었으니 천 수십년 전의 일이다.
서현은 무엇 때문에 천년 전 송나라의 '개봉'의 한 지붕 밑에서 초롱불을 켜고 앉아 이 작업을 했는지를 생각해 본다. 기경 13편에 나오는 오직 명분을 바로 잡는다(必也正名手)는 유가의 가탁을 그도 생각했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