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역사 칼럼] 일연을 생각하며
[충청 역사 칼럼] 일연을 생각하며
  • 이 청 논설실장
  • 승인 2019.10.17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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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투데이/ 이 청 논설실장] 역사를 꿈으로 인식 하고 몽환과 환타지의 역사를 썼던 일연 스님이 금년으로 탄생 810년이 된다.
 

일연은 참으로 희한한 역사 쓰기로 단숨에 역사의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는 동시에 그의 책으로 인해 박사학위가 수백편(?)이 나온 텍스트의  저자이다. 일연은 역사를 몽환과 환타지라는 이중적 중첩 구조로  당시의 역사 쓰기의 어려움을 피해 우리 민족의 영원한  역사의 스승이 된 사람이다. 그의 탄생 800주년을 맞아 역사 학계에서 이런 저런 행사를 갖기도했다. 필자는 한때 삼국사기를 배개삼아 읽은적이 있지만, 삼국유사 또한  일독이 필요한 책이라 강조 하고 싶다.

역사는 어떻게 쓰여지나.

지난 70년대 부터 부여읍 궁남지 발굴이 시작되어 90년까지 계속되고있다. 궁남지는 백제 30대 무왕이 백마강의 물을 십여리나 끌어 들여 만든 인공 연못으로 그 진흙펄 속에서 작은 목간 한점이 발견되어 주목을 끈바 있다. 목간에서 36자의 글자가 판독 되었다.
 ㅡ 西部後港巳達巳斯 丁ㅇㅇㅇㅇ丁  歸人 中口 四 小口 二 邁羅城 法利源畓五形.
ㅡ  西丁部夷.

목간의 내용은 사비성의 서부에 사는 사달사사( 서부 후항에 사는 성년 가구주)가 ( 20세 이하 4인 어린 아이가 2명의 가족) 매라성에 좋은 전답이 약간 있다는 내용이다. 궁남지에 동원된 일꾼이었던 '사달사사'의 인적 사항인 것이다.

학자들은 이 목간에서 여러가지 사실을 알아 낸다. 먼저 백제의 행정 구역이 5부 5항 체제였고 당나라의 율령이 들어와( 중구 소구 하는 ) 자연스럽게 사용 되고 있음도 알았다. 목간의 내용은 특히 주서에 나오는 사비의 5부 체제에 대한 기록을 증명 했고, 수서에 백제전에 나오는 각부에 5항을 두었다는 기록의 완전한 증거였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매라성이었다. '남제서'에 전하는 동성왕이 사법명을 매라성의 성주에 임명 했다는 기록의 구체적인 지명의 또 다른 출현이 학계를 흥분 시켰다. 매라성은 백제가 중국에 건설 했다는 식민지의 한 성이기 때문이다.

백제 시대에 목간이 한점 더 있다. 5세기것으로 보이는 목간이 인천의 한 백제성터에서 나온바 있는 데 불인호야(不仁乎也)라는 논어의 한 구절로 이 시대에 백제는 지방까지 논어를 읽고 사비에 5부5항 체계와 일목요연한 호적제로 나라를 통치 하는 현대적인 국가를 운영 하고 있었다는 결론을 얻는다. 5세기는 백제가 일본에 문자를 전해준 시기다. 논어를 읽고 쓰는 사람과 이제 겨우 기초 한자를 배우는 사람의 수준은 하늘과 땅이다. 당시 백제와 일본의 수준차인 것이다. 목간하고는 조금 다르지만 60년대 북경 근방에서 한 비문이 발견 된바 있다. 난원경묘지명이 그것인데 이 묘지명에는 백제 사람 난원경이 백제 지심주에 살다 나라가 망하고  당에 들어와 요서에서 달솔을 지내다 죽었다는 내용이었다.달솔은 백제의 관등이고 요서는 백제가 중국에 개척했던 바로 그곳이다. 목간의 매라성과 난원경의 요서 달솔을 지냈다는 내용은 백제의 해외 경영설을 뒷받침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러나 이상 하게도 우리 학계는 백제의 중국 진출설에 고개를 젖는다. 매라성도 요서의 달솔도 신뢰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난원경은 조상이 오환에서 온조 비류 두 형제를 모시고 온 왕족이라고 했다. 난(難)은 고대에는 어지러운 의미가 아니라 새를 뜻하는 성스런 의미가 있던 한자였고 온조 비류가 난씨였다는 내용이었다. 부여씨니 뭐니 하며 억측만 있는 백제 왕씨에 대한 새로운 단서로 난원경 묘지명은 훌룡하다.

그러나 아직은 이 기록들이 정리되지 않고 있다. 이 기록들이 제 자리를 찾아 역사에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헤쳐 나가야 할 과정이 산적 하다. 이미 이 방면에서 자리 잡고 있던 인식을 떨쳐 내는 것과 그 인식을 거둬 내고 새롭게 자리를 잡아 줄 연구 성과의 출현이란 과제가 남아 있다.

역사는 조금씩 수정되고 또한 조금씩 새로운 단서들이 출현 한다. 사실로써의 역사와 기록으로써의 역사는 기록과 고고학적 발굴이라는 두 스텝으로 앞으로 나간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우리 역사의 두 스텝이다.

김부식과 일연은 사실과 은유라는 방법으로 우리 민족에게  빛나는 선물을 준 사람이다. 당대에 함부로 쓰지 못한 사실을 일연은 은유와 환타지라는 위장으로 보여 준다. 김부식은 은유로 점철되었던 고대사를 털어내고  사실의 역사쓰기를 실천했고, 일연은 사실로써의 역사 쓰기의 어려움(?)을 알고 은유의 역사 쓰기를 한것이다.

일연의 탄생 800주년을 맞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일독을 거듭 권한다. 삼국사기가 조선의 선비들이 지어부르던 단가라면 단가라면 삼국유사는 서민들이 부르던 타령이다. 두 사서는 우리 역사의 양 보폭임에 틀림 없다. 희한 하지 않은가. 어찌 하여 하늘은 김부식과 일연을 비슷한 시기에 세상에 내 보낸 것일까.
△조도필할은 '육도'에 나오는 말로 칼을 뽑은자 반드시 베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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