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축제, 껍데기는 가라
[칼럼] 축제, 껍데기는 가라
  • 석용현 논설위원
  • 승인 2019.10.10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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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투데이 / 석용현 논설위원] 한국의 가을풍경, 전국의 구석구석까지 다양한 유형의 붕어가 없는 붕어빵 축제들이 난무하는 모습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와 같은 한국의 축제들이 전국방방곡곡에서 펼쳐지고 있는 2천여가지의 축제를 보면서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붕어가 없는 붕어빵 이미지다.

한국의 축제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지역의 차별화 된 이미지나 특성을 담아내고 그 지역마다 가지고 있는 매력요인을 찾아내어 축제를 기획하고 집행 운영하면 좋을 텐데, 전국의 축제들이 한결같이 비슷하고 특성이 미비하다 보니, 축제는 곧 사치산업이고 소비향락산업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산업처럼 국민들께 비추어 지고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다.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축제의 현실을 보면서 떠오르는 시 하나가 있어 옮겨 본다.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그리하여, 다시껍데기는 가라.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아사달 아사녀가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부끄럼 빛내며맞절할지니껍데기는 가라.漢拏에서 白頭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이 시는 백제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부여 출신으로 작고하신 신동엽 시인의「껍데기는 가라」라고 하는 시다. 그만큼 이 시는 본 필자의 가슴에 뜨거운 외침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우선 이 시는 껍데기는 가라처럼 제목에서부터 명령법을 사용하여 영혼의 힘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아울러 무려 일곱 번이나 거듭되는 가라의 반복은 분출하는 생명력과 붉게 타오르는 가을단풍처럼 정신을 뜨겁게 감지하게 해 준다.

또 전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가을의 축제들이 붕어빵처럼 비슷하게 보여주고 있는 모습의 이미지에서 이제  껍데기는 가라 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이것은 축제에 대한 막연한 반발이나 맹목적인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써가 아니라 껍데기에 대한 정의로서 알맹이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전국의 지역축제에 대한 정체성과 지역성의 알맹이를 요구한다. 즉 구체성을 지닌 축제의 차별성, 지역마다 가진 독특한 이미지, 지역의 핵심콘텐츠로 만들어지는 구체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다름이 아닌 핵심콘텐츠는 같은 공감대를 갖게 한다.  이 시에서 알맹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축제문화에 비유하여 본 주필의 관점에서 굳이 해설을 붙인다면 대체로 세 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그 하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축제 문화사회, 시민에 의한 축제의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평화사회를 만들어 나아가자는 힘찬 외침이다.

둘째는 <한라에서 백두까지>가 상징하듯이 축제에 의한 평화관광의 의지이며, 민족통일관광의 염원이다. 이를 위해 금강산 관광교류가 민간에 의한 축제교류로 이루어지는 방안을 추진하는 길이 먼저 열리길 바란다. 즉 민족의 통일관광을 이루고자 하는 이 시대의 안타까운 열망을 전국의 축제문화에서 담아내야 한다. 

세 번째는 이 시가 참된 민주사회의 건설 또는 인문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분단 상황의 극복을 위한 진정한 통일 관광한국을 위해, 먼저 이 땅에 진정한 평화관광 축제문화를 실현하는 인문주의 또는 인본주의에 기반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가을의 축제가 한국의 평화로운 국태민안을 담고,“ 관광은 평화다”라는 1967년유엔의 국제관광에 대한 접근이 한국에서 이루어지길 소망해 본다. 이와 같은 유엔정신이 살아 있는 축제의 가을이 단풍처럼 전국에 물들기를 기원해 본다. 가을이다. 삶의 알맹이를 찾는 여행을 하자.
신동엽 시인약력 =1930년 충남 부여 출생, 시집으로 신동엽 시 전집 등이 있음, 1969년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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