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룡도] 29회 5장 정운창 傅 (1)
[연재소설 정룡도] 29회 5장 정운창 傅 (1)
  • 이 은호 작
  • 승인 2019.09.15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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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50여 수가 진행된 후 더이상 진척이 되지 않았다. 한수에 무려 한식경이 소비되기도 했다. 시간을 물쓰듯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다. 정운창과 김밀수가 벌이는 대국은 딱히 유불리를 따질 수 없이 팽팽했다.

"휴!"

홍경래는 반상을 노려보며 입맛을 다셨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고 있었다. 읍(邑)은 벌써 파루를 쳐 읍민이 모두 잠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야경을 도는 포졸들과 술에 취한 사람들이 벌이는 실랑이가 담 밖에서 들려왔다. 정주는 거친 곳이었다.

현재의 시간은 1809년이다. 이 해에 연경사행단을 군관 신분으로 따라나섰던 조수삼(1762-1849)은 정주를 지나며, 라는 시를 남긴 적이 있다. 조수삼을 조희룡은 이렇게 평한 바 있다.

- 사람이 풍도, 시문, 의학, 바둑, 담론, 협기, 복택 중에 한가지만 능해도 천재라 하는데 조수삼은 이 모든 것에 능했다.

조수삼은 바둑의 고수였다. 그의 바둑실력과 협기를 높이 산 관료들은 그를 대동하고 연경 사행길을 가기를 원했다. 조수삼은 연경 사행을 무려 여섯 번이나 다녀왔다. 조수삼은 정주를 이렇게 묘사한다.

사람은 팔굽이 길어
활을 둥근 달처럼 밟고
말은 발굽이 높으니
바람처럼 빠르구나.

북 다섯 번 울리는 시각에
화살 다섯 대를 날리니
내가 이곳을 두루 돌아보면
용감한 기상을 보겠구나.

조수삼은 정주 사람들의 거친 풍모를 보고 에둘러 상무정신으로 덕담을 하고 있다. 이 시대 정주에서 의주와 의주를 연결하는 의주로 주변의 10여 고을은 도박과 술 등이 큰 사회문제였었다. 불과 4년 전 순조 5년에 평안도를 돌아본 암행어사 홍병철은 서계별단(보고서)에서 이 지역을 이렇게 보고한다. 출처는 일성록이다.

- 이익을 위해 예의를 모르고 작은 이익을 위해 죽음도 불사합니다(利之所在不下禮義財之所聚罔念生死).

1896년 의주 사람 이용석은 고종에게 이런 상소를 하고 있다. 출처는 고종실록이다.

- 뜻있는 자들이나 그렇지 않은 자들이나 마음대로 행동하고 대개가 술과 바둑으로 도박 방탕을 일삼고 있습니다.


바람이 다시 불어왔다. 차갑지 않은 바람이었다. 올여름은 무척이 더우려나. 홍경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루로 나왔다. 마루 끝에는 김견신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도 지루한 것인가.

"도무지 계가가 안된다."

김견신의 푸념이 들려왔다. 의외로 김밀수가 선전을 하고 있었다. 생각 외로 고수였다.

"저 친구, 한가닥하는데요?"

우군칙이 홍경래의 옆으로 다가오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환기두로 계가를 하나?"

"아뇨, 형님, 판내기니 환기두가 필요 없죠."

판내기란 말이 나온다. 판내기와 대치된 것이 방내기다. 방내기는 10집마다 돈의 액수가 달라지는 내기법으로 '기청하관혁선'의 기보에 적나라하게 반영이 되어있다. 이 대목에서 16배자 바둑과 4배자 바둑의 계가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16배자(配子).

1. 흑백이 8점씩을 놓고 흑이 천원에 두며 시작한다.
2. 공배의 착수도 집이다.
3. 경계선상의 단수되는 자리가 중요하다.
4. 사석을 상대방에게 돌려준다.
5. 진지 안의 돌을 들어낸 다음 계가한다.
6. 천원자리를 태극이라 했다.

4배자(配子).

1. 흑백 두 점씩 놓고 백 선수로 시작한다.
2. 혹간 흑이 선수로 두는 경우도 있다.
3. 공배의 착수도 집이다.
4. 환기두와 연관된 집은 더욱 중요하다.
5. 사석을 되돌려 주고 집과 돌을 모두 합해 계산한다.
6. 이곳에 환기두법을 다시 계산한다.
7. 천원 자리를 태극이라 한다.

"이러다가 날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게요. 형님, 피곤하시면 객주에 가서라도 쉬시지요?"

"아냐, 선아좀 봐라. 아예 바둑판에 달라붙어 있다."

홍경래는 방안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선아는 바둑판 옆에 붙어 부동석이 되어 있었다. 지루함에 좌불안석인 여타 구경꾼들과는 차원이 다른 끈기와 인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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