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28회 4장 풍운의 그림자(7)
[연재소설 청룡도] 28회 4장 풍운의 그림자(7)
  • 이 은호 작
  • 승인 2019.09.10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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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려진 음식이 모두 비워지자 상이 나가고 차와 간단한 과일이 나왔다. 금강산도 식후경인 셈인가. 한차례 풍성한 식도락이 끝나자 다른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두 명의 기객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별다른 표정 없이 바둑판 앞에 앉는다.

“승마를 탄 사람 외 모두 나가시오.”
송단의 패두가 장내를 정리했다. 벽을 튼 커다란 방안은 열기로 후끈했다. 오포장은 가희의 귀에 대고 무엇인가를 말한 후 방안 한곳을 차지하고 앉았다.

“먼저 대국방법이요. 사배자에 환기두법을 사용합니다. 장점바둑은 너무 시간이 걸려 사배자로 합니다.”
기마의 주선자이자 놋돈의 관리 책임자인 패두가 바둑의 형식을 말했다.
사배자(四配子) 바둑은 좌상과 우하귀에 흑을, 우상과 좌하에 백을 놓고 두는 형식의 바둑으로 전형적인 중국식 바둑을 말한다. 사배자 바둑은 반상에 있는 모든 돌의 많고 적음으로 승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장점 바둑, 즉 16배자 바둑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바둑으로 이 형식에 환기두법을 적용, 게임의 묘미를 더한 것이다.
환기두란 말은 사배자 바둑에 한가지 룰을 더한 것으로 돌과 집의 확보라는 개념에 진지의 확보를 추가한 것이다. 나의 진지보다 상대의 진지를 더 세분화시킨 것에 점수를 더 주는 방식인 것이다.

사배자 바둑의 엇갈린 포석은 이미 전투 바둑을 예고한다. 이 바둑에 상대의 진지를 가르는 공세가 더해져 바둑은 극단적인 전투 바둑이 되는 것이다. 이미 확보한 자신의 진세 외에 상대의 말을 분단하려는 공세는 치열한 끊기 싸움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망우청락집’이나 ‘고문혁보’ 등의 중국의 고대 기보집은 환기두법을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17세기 중국의 유수한 기보집에는 어김없이 환기두법이 출현한다.
이 점을 고려한 연구자들은 환기두법을 17세기 극단적으로 치닫던 중국의 도박 바둑이 만들어낸 소산으로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 방식을 보고 혹자는 조선의 순장(?) 바둑인 16배자 바둑이 나왔다고 한다. 도박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이란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던 16배자 바둑은 연조가 더 깊다.
세상에는 한가지 바둑만 있던 것이 아니다. 역사 이래로 세상에 알려진 바둑의 형식은 여러가지다.
1.무치석 바둑(일본식)
2. 사배자 바둑(중국식)
3. 16배자식(순장식바둑)
4. 12배자식(인도)

위의 형식은 17도 바둑 이후의 세상에 존재하던 바둑의 형식이다. 12배자 바둑은 1951년 일본바둑잡지 위기에 포착될 당시 17도였다. 반상의 모든 돌을 거둔 무치석 바둑, 즉 일본식 바둑은 중세에 극성을 떨치다 20세기 초에 세상의 바둑을 통일한다. 사배자, 16배자 바둑이 무치석 바둑의 광풍에 일시에 사라진 것이다.

중세에 조선과 중국바둑은 일본과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조선 중국 간에는 4배자 16배자 바둑이 서로 소통되었다. 어느 일방의 바둑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특별한 유행은 있었다.
우리는 16배자 바둑을 단순 전투형 바둑으로 알고 있으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16배자 바둑이야 말로 현란한 수읽기와 무진장한 끝내기의 묘미가 있는 바둑이다. 순장바둑을 검토한 프로들은 모두 입을 모아 끝내기의 복잡함과 묘미(?)에 혀를 내두른다.

사배자도 비슷하다. 사실 일본식 바둑은 엄밀하게 따져보면 이 두 가지 바둑에 비해 원시적이란 것이 연구자들의 토로다. 반상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게임의 규칙 하나도 만족 시키지 못하고 예외규정을 두어 해결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두고 있는 바둑이다.

여화로 안영이(바둑연구가)의 취재로 국내에 알려진 12배자 인도 시킴식 바둑의 계가법은 4귀생에 30집, 통어복에 20집을 덤으로 준다는 것이다. 사귀생통어복 필승이란 바둑격언이 그 곳에서 나온 것일까. 고스톱의 점수 계산이 지역마다 다르듯 바둑도 그랬던 것일까?

“자, 시작하기 전 연장자인 송기 박유연이 안기 조유태에게 술 한잔을 내려줍니다.”
바둑의 장전(張典)인 패두가 대국을 하기 전의 간단한 의식을 시작했다. 박유언이 술병을 들어 조유태의 잔에 따라 주었다. 조유태가 두 손으로 그 잔을 받아 마시고 기생이 들고 있던 수건으로 잔을 깨끗이 씻어 박유언에게 술을 올렸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읍하고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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