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27회 4장 풍운의 그림자(6)
[연재소설 청룡도] 27회 4장 풍운의 그림자(6)
  • 이 은호 작
  • 승인 2019.09.0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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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이 열리고 오포장은 가희와 함께 성안으로 들어가 송영(松營)의 객사 한칸을 얻어 숙소를 정하고 거리로 나왔다. 소영은 개성의 관아로 종2품관인 유수가 책임자인 도회지다.

"포졸을 시켜 길안내를 하지요?"

송영의 형방이 오포장의 신분을 알고 손님 접대를 하겠다고 나섰다. 오포장은 병부와 형부에서 발부한 신분패가 있었다. 특명을 받고 나온 관원들에게는 지방관아는 숙식편의는 물론 각종 업무협조를 해야 했다. 오포장은 각 관아의 형방에 속한 포졸들을 지원받을 수도 있었다.

"호호, 아닙니다 저 계집과 돌아보면 되지요."

오포장은 형방의 호의를 사양하고 가희를 대동하고 읍내 시전거리로 나왔다. 어둠이 내려있어 시전은 철시되어있었다. 그러나 떡집이나 장국밥집 등은 아직도 문을 열어 놓은 곳이 있었다. 그러나 시전 끝부분에 있는 골목에 자리잡고, 홍등 청등이 훤하게 내걸린 기방가는 이제 손님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포장님 저 집 투전판 냄새가 나는데요?"

오포장의 곁을 바짝 붙어 걷던 가희가 한 기방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호호, 냄새? 니가 사냥개냐?"

오포장이 여전히 실실 거리며 물었다. 골목 안에 즐비한 기방가들 중 한곳을 두 명이 건장한 사내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왕자들이 망을 보고 있는 집이면 투전판 아닌가요?"

"호호,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니년도 포청밥 먹은 지가 오래니 그 정도 냄새는 맡겠지. 한번 들어가 볼까?"

"수검(검문)을 하려고요?"

"호호, 수검은 이년아, 맨날 그 짓거리 재미가 있니? 객지에 나왔으니 그냥 한번 놀아보려 한다."

"그러다 잃으면 어쩌려고요?"

"호호, 잃기는 왜 잃니? 안 잃고 따면 되지."

오포장이 가희의 등짝을 두드려주며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었다. 예로부터 기생 평양, 투전 송도란 말이 있을 정도로 개성은 투전으로 유명한 곳이다.
개성은 고려시대 설치되었던 관전 상인들의 영향으로 상업이 조선 8도에서 가장 발전한 곳이었다. 18세기 송방은 한양의 경강상인들을 능가할 정도로 자본과 넓은 상권을 확보하고 있었다. 송방은 경강상인들과 싸워 1807년에 설치된 홍삼 증포소를 개성에 유치할 정도였다.

"딴 집으로 가슈."

오포장과 가희는 기방의 문앞에서 제지를 받았다. 여름엔 가죽신에 겨울은 나막신을 신으며 세상의 법도를 거스른다는 그 유명한 조선의 검계의 왈짜들이 분명했다. 한 사내는 귀밑에 커다란 칼자국이 있었다.

"호호, 한판 놀려고요. 객지에 와 투전판을 보니 손이 땡겨서…."

"객지? 한양에서 왔수?"

"호호, 맞아요. 내가 골패라면 사족을 못 쓰걸랑요."

오포장이 왈짜들에게 사정을 했다. 기방은 왈짜들이 점령을 하고 있었다. 모르면 몰라도 큰판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골패가 아니고 기마요."

"호호, 기마요. 그거 내가 더 미치지요. 호호 제발 끼게 해 주시요. 전대는 두둑하다오."

오포장이 허리춤에서 전대를 풀어 보여주며 호들갑을 떨었다. 기마(碁馬)는 바둑으로 하는 투전을 말한다. 승패를 예측하고 어느 한쪽에 돈을 걸고 승패에 따라 돈을 배분받는 경마식 도박으로 청나라 시대 중국에서 특히 유행하던 방식이었다.

"하하, 노름쟁이가 맞긴 맞는 모양이우? 들어가 보슈. 대신 딴짓하다 걸리면 바로 칠성판 매는거유?"

왈짜들이 오포장과 가희의 몸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출입을 허락했다. 겁을 주는 말이 걸작이다. 칠성판은 관을 덮는 판자로 대개는 그 위에 사자의 이름을 적는 경우가 많다.기방안의 가장 넓은 방에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한쪽에는 바둑판이 놓여져 있고 대국자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자, 올만한 분은 모두 온 모양이니 놋돈을 거시요. 갑은 송기(松碁) 박유연, 을은 안기(安碁) 조유태요."

비단옷에 두건을 쓴 건장한 사내가 바둑판 옆에 있는 나무함을 내놓고 말했다. 송기 안기란 말은 송도의 고수, 안주의 고수란 말로 오늘의 기마에 초대된 바둑 고수를 말한다. 사내의 두건 위에는 송(松)이란 글자가 선명했다. 짧은 옷소매 사이로 보이는 손목에 문신이 보였다. 개성을 무대로 활동하는 검계의 두령 또는 유력자임이 분명했다.

"조건부터 말씀을 하셔야지?"

한복에 갓을 쓴 사내가 장죽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참가자들의 면모가 다양했다. 양반 상인을 가리지 않은 조합이다.

"자릿세 1할, 그 외는 양분이외다. 경비는 승자들이 추렴을 해서 부담합니다."

"기료는 어찌합니까?"

"기료는 자릿세에서 충당하는 것이 기마의 법, 다른 건 없소이다."

"하하, 좋소, 역시 송단의 패두는 담백해서 좋단 말이야. 자 나는 송기 박유연에게 5백 냥이오."

한복을 입은 사내가 전대 꾸러미를 내놓았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너도 나도 전대를 풀었다. 갑을의 놋돈이 비슷했다. 순식간에 물경 5천 냥의 놋돈이 모아졌다. 5천 냥이 실감이 나지 않으시나.
1812년 송도상인들이 작성한 사개문서(四介文書)로 당시 돈의 액면가를 비교해 보자.

- 1812. 개성상인 박수장 길주포 6동(同) 555냥 매입. 1813년 손인숙 서천포 2동을 60량에 매입. 김경재 서천포 13동을 1072냥에 매입. 김일청 경주포 2동을 270량에 매입.

개성상인들은 경주 서천 길주까지 사람을 보내어 팔포를 수집해온 것으로 보인다. 팔포의 값은 지역과 품질에 따라 제각각이다. 그러나 대충 엽전 5백 냥은 팔포 5~6동 값이고 쌀로 환산하면 50석 정도다. 쉽게 말해 이 자리의 참석자들은 쌀 50가마를 바둑 한판의 승부에 건 것이다.

"응? 댁은?"

송단의 패두가 오포장을 보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금방이라도 경비를 서고 있는 왈짜들을 문책할 기세였다.

"호호, 화내지 마세요. 나도 한수저 거들려고요. 자 5백 냥이 형세가 막상막하로 보이니 나는 송도의 고수에게 걸지요."

오포장이 전대를 끌러 청은화 다섯 동을 내놓았다. 청은화는 한 동은 엽전 백 냥에 해당한다. 청은화는 한마디로 송편 모양의 은덩어리다.

"허허? 재미난 인사군? 좋소. 투전판과 사내의 연장은 크면 클수록 좋은 법이니까."

패두가 오포장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순간 여러 개의 상이 들어 왔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산해진미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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