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매죽당 성삼문선생의 오해와 진실.
[기획] 매죽당 성삼문선생의 오해와 진실.
  • 이 청 충남역사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 승인 2019.09.0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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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선생 친필 공개 선생의 호는 매죽헌(軒)이 아닌 매죽당(梅竹堂)이다.

1418년 홍주 적동리 노은동 외가에서 태어난 매죽당 성선생은 4세때 조부의 별장이 있는 연산 한양골에서 청년기를 보낸다. 20세때 문과에 급제를 한 후 낮은 벼슬을 살더 집현전 학사로 발탁 세종의 훈민정음 사업에 참가 십여차례나 중국 요동을 방문 음운학자 황찬에게 문자창제의 기초 자료를 수집해 오는등 한글창제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성선생은 당대의 문원 안평대군 이용과 용비어천가 편찬사업을 함께 하는등 세종과 문종의 지인지감을 얻어 문종에게는 세자를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는등 절대적 신임을 받는다. 이런 성선생이 반정군 세조세력에 격렬하게 맞선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선생의 호는 매죽당이다. 헌(軒)과 당(堂)이 별 차이가 없고 지금 그것을 따지는 것은 부질 없다 하지만 매죽당은 선생 자신이 지은 호로 존중해야 마땅하다.

매죽헌은 20세기 초 선생의 문집을 간행 할 때 어떤 이유로 매죽헌으로 지어진 뒤 대중에게 공인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사람 개인의 호로 당 집당호로 헌이 붙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다. 이 문제를 학자 박철희등이 문제 제기를 한바 있으니 그냥 넘길 일은 아니다.

선생의 친필은 몇편 되지 않는다.

오래전 일본에서 발견된 안견작 몽유도원도에 성선생의 친필이 5백여자가 들어 있어 선생의 면모를 엿보게 한다. 선생은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신필 안견의 화폭에 감동과 회오를 기록한다.

-가련토다. 수많은 선인들이여 무릉도원이 있다 없다를 다투다가 선경을 인간의 일로 욕되게 하니 고기잡이배를 탄 사람이 꿈을 깬 후 다시 그곳을 다녀온 사람 없었다네.

선생의 간결하고 힘이 있다. 유려하면서 힘찬 필력속에 스며든 지적 날카로움이 번쩍인다. 선생이 반정군 세조에 맞서다 투옥된 과정은 생략한다. 선생은 1456년 6월8일 한양 군기시 앞에서 처형을 당한다.

처형방식은 능지처사(凌遲處事)로 인류가 발견한 가장 악독한 방식이었다. 성선생은 의금부 취조중 세조의 이름을 부르고 욕을 하는등 폭군 세조를 자극했다. 선생은 의금부에서 사형장으로 이동하면서 절규의 시 한수를 남긴다.

님이 주신 밥에 님이 주신 옷을 입고

한평생 그 마음을 가실줄이 있으랴.

한번 죽음으로 충의를 알아

현릉(문종의 묘)의 송백이 꿈에 이른 아른이네.

(食人之食衣人衣/ 所一平生莫有違/一死固知忠義在/

顯陵松栢夢位位.)

사육신중 군기시 앞에서 능지처사로 환열(還裂)을 당한 사람은 선생이 유일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의금부 옥중에서 고문을 당하다 사망했다. 능지처사는 처참과 같은 말로 잘 들지 않는 칼로 사람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살점을 조금씩 도려내는 형벌로 사지를 우마를 동원하여 거열형과는 다르다.

조선실록은 군기시앞에서 능지처사 했고 모든 대신들이 도열하여 뜯어 놓은 살점을 보았다 기록하고 있다.

절세의 충신 성삼문선생은 불사이군의 충의를 지키다 이렇게 잔인하고 도 무자비한 최후를 맞았다. 선생의 시신은 이미 없다 해야 맞을 것이다. 선생의 시신은 노량진 강변에 버려졌다가 북한산 어딘가로 옮겨진 기록이 있은후 연산 전장에 무덤이 만들어 진 후 오늘에 이른다.

선생의 정신적 유산은 연산에서 연기로 옮겨져 사당과 심지어 성삼문 문화재가 12년째 개최되고 있다. 홍주는 천년 역사 인물로 그를 기리고 있지만 선생의 유허비 한 점 외 선생과 관련된 유물은 고증 이 되지 않고 어정쩡한 상태다.

성삼문 선생과 관련 있다고 주장하는 중요민속 문화재 엄찬 가옥은 문화재청 조사로 성삼문선생과 연관 짓기 힘들다는 의견을 낸다. 외손에 외손이라는 엄찬이 홍주에 살았는지도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삼문선생이 태어난 외가가 노은리 어딘인가를 고증할 필요가 있다.

성삼문 선생의 호는 매죽헌이 아닌 매죽당이다. 선생은 거열형이 아닌 능지처사를 당했고 홍주에는 송시열이 찬 한 비문 하나만 유물로 남아 있다는 것이 선생에 대한 펙트다. 지금부터 홍주의 위인 성삼문선생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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