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25회 4장 풍운의 그림자 (4)
[연재소설 청룡도] 25회 4장 풍운의 그림자 (4)
  • 이 은호 작
  • 승인 2019.09.01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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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촌 창루의 행수기생 담비를 물고를 낸 오포장은 가희만을 대동한 단출한 차림으로 한양을 떠나 송도(松都)에 다가와 있었다. 송도는 개성의 다른 지명이다. 오포장이 한양에서 벌여놓고 있던 기찰 건은 다른 수하들에게 맡겨졌다.

"육영감에게 뒤탈은 없을까요?"

가희가 송도에 도착해서도 육종사관의 해코지를 걱정했다. 오포장은 담비를 풀어주는 대신 거의 시체를 만들어 놓고 송도 행락을 핑계로 포청을 발행(출발)했었다. 물론 직속상관인 육종사관에게는 보고도 하지 않은 채였다.

"호호, 뒤탈은 무슨…. 너는 배도 엄청 고프겠다?"

"네에?"

"걱정이 많으니 배도 고플 거 아니니? 종사관에게 터져도 내가 터질 텐데 왜 니년이 걱정을 하는 거야? 호호."

오포장은 살랑살랑 걸으며 웃었다. 멀리 송도가 바라보이고 성 밑에 많은 병졸들이 모여 있었다.

"웬 군사들이죠?"

"호호, 글쎄다. 성조를 하는 모양이네."

오포장은 성 밑에 대형을 이루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군사들을 보며 말했다. 중군(中軍) 깃발로 보아 어영청군이었다.
성조(城燥)란 말은 공성전을 대비하는 훈련을 말하는 것이다. 1800년 어린 나이로 순조가 등극을 하자 순조는 국가운영의 실무를 익히고 습득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정조 치세에 잘 훈련된 신하들은 순조에게 국정운영의 메뉴얼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것이 '만기요람'이다. 서용보 심상규 등 정조의 각신들이 만든 만기요람은 군왕의 일상정무를 위한 지침서이기도 했다.

"호호, 전 임금이 잘한 것이 저거 아니냐?"

"전 임금이라니요?"

"정조 임금 말이다. 장용영이다 뭐다 해서 무부들의 기를 잔뜩 살려준 게 바로 전 임금 아니시냐?"

"어머 진법을 펼치네요? 곧 훈련을 시작할 모양인데요?"

성안에서 타(拖 ; 타악기)가 여러번 울리자 휴식을 취하고 있던 병졸들이 대열을 이루어 성 밑으로 전개를 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무임(장교)에게는 필독서가 있었다. '기효신서' '등단필구' '병학지남(兵學指南)이 그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자칠서(武者七書)는 무인들에게 초보적인 군사학 개론일 뿐 그렇게 전쟁에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니다.

무자칠서는 손자, 오자, 손빈, 사마법,삼략,위료자등 병법서를 말하는 것이나,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전쟁 수행과는 다소 동떨어진 것이다. 무자칠서는 그저 무인들의 군사철학의 일종이겠다. 무자칠서를 다른말로 무경(武經)칠서라고도 한다. 장수가 전쟁을 위해서는 조련, 보급, 통신, 마병, 포병, 치중(장비) 의료 전반에 대한 방대한 실무요람의 습득이 관건이다. 만기요람에 보이는 공성전의 한 대목이다.

- 성조(城燥)

타를 한번 치면 밥을 짓고 두 번 치면 모든 군병은 무기를 들고 성에 오른다. 예비병력은 중군의 앞에 모여 대기한다. 타를 세 번 치면 주장이 나와 장대에 오르고 중군(中軍)이하는 예로 맞는다. 중군이 기를 올리면 각군은 일제히 기를 오려 호응한다.

성 밖 대항군(적군)이 포착되면 고함을 세 번 크게 지르고 성문을 닫고 숙정패(침묵)와 표미기(대기하라는)를 내걸고 기다린다. 대항군이 나타나면 경보를 발하고 백 보에 오면 불량기와 조총으로 일제히 타격하고 오십 보에 오면 화전과 화살을 쏘고 창부(倉夫)는 모든 타구(성위의 돌출구)로 나와 전투 준비를 한다. 적이 성 밑에 다다르면 돌로 내리치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은 창으로 공격한다.

적이 퇴각을 하면 기병과 유격병이 성문을 열고 추격한다. 적군이 모두 물러가면 휴식경보를 내고 휴식한다. 중군이 기를 내리고 초병만을 남겨놓고 모든 병사는 영(營)으로 철수한다. 밥을 지어먹고 모든 불을 끄고 중군의 경고(시간을 알리는 북)가 울리면 아야! 하는 소리를 치고 모두 잠든다.이때는 군법이다. 사법은 아량이 있으나 군법은 아량이 없다.

훈련의 시작부터 취침시까지의 메뉴얼이다. 다시 '병학지남'에 보이는 군부대의 야간 취침의 모습이다. 병학지남은 기효신서를 조선의 실정에 마추어 새로 편찬한 병서다.정조시대에 만들어졌다.

- 신호포를 세 번 쏘고 징을 울리면 대취타를 연주하고 영문을 닫는다. 신호포를 한번 쏘고 타를 울리면 쉰다. 기화(起火)를 쏘아 올리면 영안에 불을 피우고 타를 세 번 치면 갑주(의장)를 풀고 밥을 지어먹고 잔다.

우리는 조선군대를 당나라 군대식의 졸(卒)로 보는 경우가 있다. 벙거지를 쓰고 삼지창 하나들고 딸랑거리고 다니는 것이 조선군인 줄 알면 큰 오산이다. 사실의 기록에 보이는 조선군대의 진면모는 대단하다. 3만 명이 넘는 보마군(步馬軍)이 소리와 깃발의 신호만으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공격과 방어의 전개와 산개가 가능했던 것이 조선군이다.

3만의 군대가 한자리에 모여 몇가지 약속된 신호만으로 공방전을 자유자재 펼친다는 것은 엄청난 훈련과 살벌한 군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조선의 군법은 칼의 법이었다. 공격시 마지막에 서는 자, 퇴각시 선두에 서는 자 즉참(卽斬)이 조선의 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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