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바둑 절집을 찾아가다
[기획] 바둑 절집을 찾아가다
  • 이지웅 기자
  • 승인 2019.09.23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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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부춘산 서광사 바둑 맥을 잇다.

25사(史)는 백제가 절이 많고 탑도 많다(多寺多塔)고 했다. 아울러 바둑이 매우 유행(博奕崇)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반도의 바둑의 동전(東傳)은 삼국시대 초기까지 올라가고, 바둑과 절집의 접점은 복수의 기록과 유물로 나타난다.

승려 도림이나 신충이 단속사로 몸을 숨겼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은 너무나 유명하다.

동시에 경주 분황사지에서 발굴된 전돌 바둑판과 익산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바둑돌 등은 한반도에 바둑이 전래 된 후 바둑과 절집이 잘 어울렸던 분위기를 전해준다.

사실 바둑은 절집과 잘 어울린다. 최근에 와 불교가 잘 정비되면서 바둑과 불교를 비교하고 따져보는 작업이 부족하다 보니 '도를 추구하는 세계에 걸맞지 않는 바둑'이란 시선이 있었으나 예로부터 산중의 수도승들 사이에 바둑이 사랑(?) 받아 왔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산중 수도승들 중 애기가들은 의외로 많았다. 보우, 서산, 사명당은 말할 것 없고 만해, 운문, 그리고 근대불교의 일월인 '경허선사'마저도 애기가의 대열에서 빠지지 않는다.

바둑두는 즐거움이 책읽는 것보다 낫지.

어찌 상산의 네 늙은이만 있으랴.

넓은 곳에는 수천 병사가 학의 진을 펼치고

일단의 말은 풀어놓은 고기마냥 19로를 뛰쳐오르네.

손가락 끝에서 내려 앉는 강가의 기러기인 양

가는 밤비 속에 바둑판 위에 딱딱.

귀에서 벌어지는 쟁투는 군자의 도는 아니지만

긴여름을 살아내는 잠깐의 여유로 그만일세.

(賭棋之樂勝看書 何特仙山四皓居 拓地千兵閑似鶴 潰圍一帶活如魚 指端點點江鴻下 枰上丁丁
夜雨疎 犄角連環君莫道 消長夏計信紆餘) -경허집.


경허(鏡虛, 1849년~1912년)는 말이 필요 없는 근대 한국불교의 태두로 그가 말하는 바둑은 '한갓 도략'을 뛰어넘는다. 경허는 서산의 '천장사'에 주석했다. 그의 제자 '만공'은 인근 '수덕사'에 살며 '덕숭문중'이란 '연꽃문화'를 피워냈고 그 이야기는 이미 전설이다.

'서광사'는 충청도 서산에 있는 절집이다. 종무소 벽에는 '경허' '만공' '벽초' 스님의 사진이 걸려 있어 방문객의 눈길을 끈다. 서광사의 내력이자 선맥의 증표다. 서광사 주지 '도신' 스님은 '절집 안에 바둑 있다'를 세상에 들어낸 분이다. 바둑을 좋아하면서도 선뜻 애기가임을 자처(?)하기 저어하던 절집풍토를 걷어차는 모습이 시원하다.

왜 바둑인지요?

삼매는 바둑과 통하니까요. 삼매는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는 집중의 결정이니까요. 그 경지에 이르면 나도 없고 너도 없는 상태가 되지요.

(반상무인을 말하는 것일까. 스님은 내친 김에 삼매를 잘 경험하려면 체력이 중요하다 말한다)

이 상태에 이르기 위해 정신력과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체력이 중요합니다.

정신력과 체력이 좋은 삼매를 경험하는 요체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지요. 이 점을 착안하여 선바둑 명상을 생각했습니다. 바둑 템플스테이라 이름 지었지요.


선바둑 명상을 통해 마음과 몸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자는 도신스님의 말 속에 육상산(陸象山, 1139-1192)의 '우주는 자신의 일이고 개인 자신의 일은 곧 우주의 일이다(宇宙間事是己分兩事 己分內事 是宇宙間事)'라던 말이 떠오른다. 육상산은 바둑에서 하도낙서를 깨달았다는 바로 그 사람이다.

도신 스님과 바둑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치 않다(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다만 바둑이 명상수련의 한 방편일 수 있다는 그의 생각과 실천은 항상 바둑을 궁금해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좋은 연구자료다. 하여 한번 참가해 볼 요량이다.

가을날의 하루 서광사를 다녀간다. 비산비야(非山非野) 같은 부춘산의 가을풍광이 내려앉은 서광사 경내에서 오로(烏鷺)의 꽃이 피어날까.

길을 걸으며 시 한 줄을 생각해 본다.

반상에서 태초의 혼돈을 보라

마음의 눈으로 우주가 삼매임을.

(盤上盤古見渾淪. 心眼六甲則三昧).

서광사 주지 도신스님은 현재 수덕사 박물관장 소임을 맡아 활동하시며 서광사 여름음악회를 매년 열어 지역민들의 정서 함양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도신스님은 작년 수덕사에서 전국 바둑 대회를 열어 1000여명의 기객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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