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21회 3장 서로(西路)의 상인 (7)
[연재소설 청룡도] 21회 3장 서로(西路)의 상인 (7)
  • 이 은호 작
  • 승인 2019.08.22 17: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 인간이 정운창이란 말이냐?"
홍경래가 선아에게 재차 물었다. 홍경래도 ‘한양에 종귀, 호남 운창’이란 말을 들어 알고 있었다. 조선에서 바둑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이름들이었다.

"네."
"니가 어찌 정운창을 아느냐?"
"저 어릴 적 우리 집에서 얼마간 기숙한 적이 있어요. 아버지가 바둑을 좋아하셔 바둑인들이 집을 무상으로 드나들었거든요. 나는 저 할아버지한테 바둑도 배운걸요."

"끄응."
홍경래는 그제야 허낙생이 김견신과 작당을 하여 단순한 우군칙을 골탕먹이려 한 것을 알았다. 정운창(鄭運昌)은 전라도 보성 사람으로 일찍이 바둑을 익혀 조선 제일의 국수 김종귀를 꺾고 당대의 국수로 군림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선기(善碁)를 불러와 우군칙을 역으로 타격하고 있는 것이다.

"형님, 바둑 구경 안하세요?  한참 재미있는데?"
우군칙이 소변을 보러 나왔다가 홍경래가 집밖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누가 이길 거 같냐?"
"모르겠어요. 아직은 미세한 듯하네요."
우군칙은 어느 정도 바둑을 알고 있었다. 잠상을 하는 해상(海上)의 무료한 시간을 바둑으로 소일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이었다.

"너 저자가 누군지 아니?"
"김밀수라고 말씀 드리지 않았나요?"
"김밀수 말고 저 중늙은이 말이다. 저자가 정운창이란다."
"네에?"
"왜 놀라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오늘 딱 그 짝이다."
"저자가 정말 정운창이란 말입니까?"
"선아가  어릴 때 보아 안다는구나. 선아네 집에 자주 와서 묵었다는 거야."
"저런? 허낙생 저 개자식?"
우군칙이 당장이라도 방안으로 뛰어들 태세였다. 홍경래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판을 엎으려고?"
"그럼요. 형님, 이건 사기입니다요."
"사기? 니가 이기면 정상이고 지면 사기냐? 망신 떨지 말고 자중해라. 견신이하고 여기서 전쟁을 할 수는 없다."
"형님, 채단 저놈들 상대가 됩니까요? 이참에 싹 쓸어버리지요?"
우군칙이 전쟁을 주장했다.
허낙생의 잡안에는 홍경래 우군칙 김견신이 대동하고 다니는 칼잽이들이 이십여 명이나 되었다.
좁은 공간에서 수십 명이 뒹구는 칼부림이 일어나면 누구라도 무사하지 못할 터이다.

"경거망동하지마라. 우선 판을 지켜보자. 패해도 어쩔 수 없다. 하하, 허낙생 저 인간 정말 재밋는 놈이군."
홍경래가 웃음을을 지으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바둑은 이제 20여 수가 진행되고 있었다. 양 대각선을 대치하고 두는 바둑이라 싸움바둑이기 십상인 데도 반상은 평온했다.

사배자(四配子) 바둑을 중국에서는 치석(置石)바둑이라고 한다.
좌자(坐子)바둑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의 오랜 바둑책인 '망우청락집'을 보면 중국의 사배자 바둑의 연조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바둑은 기본적으로 사배자 바둑에 두 가지의 계가법을 혼용하여 사용해 왔다.

'적정록' '기청하관혁선' '조선고적보' 등 중국에 전하는 바둑의 고문헌은 한중일 오키나와의 바둑을 전한다. 모두 1천 쪽이 넘는 책들이다. 필자는 불과 얼마전에 중국에서 직접 이 책들을 모두 복사해 왔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이 책들을 접했던 필자에게는 거의 무한정(?)한 실탄이 생긴 것이다. 청룡도를 결코 소설만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

오늘날 중국바둑의 계가법은 환기두(還碁頭)법이란 톡특한 계산방식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17세기와 대동소이하다. 환기두법외에는 집과 돌의 수를 계산하는 순장식의 계가법과 비슷했다. 집의 많고 적음을 계산하는 계가법이 반상에 존재하는 모든 돌의 많고 적음으로 승패를 결정하고 그곳에 상대의 집을 세분화 하는데 점수를 더 주는 환기두법의 출현은, 중국에서 극성을 떨치던 도박바둑의 영향으로 파악된다.

따악.

다시 검은돌 하나가 반상에 떨어진다. 홍경래는 돌을 놓는 기세가 결코 정운창에 못지않은 김밀수를 바라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살겨운 바람 한 줄이 방안으로 불어 들어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