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16회/ 3장 서로(西路)의 상인 (2)
[연재소설 청룡도] 16회/ 3장 서로(西路)의 상인 (2)
  • 이 은호 작
  • 승인 2019.08.11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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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상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리 크지 않은 단출한 상이었다. 홍경래와 임상옥은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었다. 술은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맑은 쌀과 구기자를 넣어 만든 '용천주'였다.

"임행수, 말이 나왔으니 청을 하나 하지요?"

홍경래가 임사옥의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말씀하시죠? 만금이 필요하십니까?"

"은화를 달라고 해서 쓰면 강탈이 아니겠소? 나는 강탈은 하고 싶지 않소. 서로 돕고 사는 길을 원합니다."

"돕고 사는 길이라시면…?"

"잠상단을 하나 도와주시요?"

"잠상단을요?"

임상옥이 기겁을 했다. 잠상(潛商)은 밀무역을 말하는 것으로 조정과 의주 책문후시를 관리하는 관(官)에서 철저하게 금하고 있는 것이었다. 밀수품이 홍삼 20근이 넘으면 참수(斬首)를 할 정도로 지엄한 국법(國法)이 있었다.

"뭘 그리 놀라시오? 국법이야 주막거리 주모의 정조만큼이나 허술한 것, 만상도 공공연히 잠상을 행하지 않소이까? 까놓고 말하리다. 내 밑에 우군칙이 있소이다. 그 친구가 운영하는 잠상을 거들어 주시요. 압록강과 서해를 무상으로 넘나드는 해수(海蒐)가 바로 군칙이요"

"우군칙을요?"

"왜요? 임행수도 군칙을 아시나보오이다."

홍경래가 어깨를 으쓱했다. 우군칙은 개성 출신으로 용천과 선천 바닷가를 중심으로 잠상단을 운영하며 서북지역은 물론 한양의 경상들에까지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자는 포청의 수배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맞소이다. 잠상으로 홍삼을 거래했다고 수배를 받고 있지요. 그러니까 내가 임행수에게 도와주시라 하는 거 아니겠소? 자 받은 술잔은 비우셔야지?"

홍경래는 술을 권하며 자작으로 한잔 마셨다. 우군칙은 잠행으로 한번 충군(充軍)을 산 적이 있었고 충군에서 풀려나 다시 잠상을 하다 수배가 되어 있었다. 포청에 다시 잡힌다면 참수를 면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끄응!"

임상옥은 낮은 신음을 토했다. 잠상은 의주 책문후시와 조정의 무역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고질적인 폐해였다. 요동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경의 월경과 위험을 무릅쓰고 해로(海路)도 마다 않는 잠상단을 국경지역에 설치한 수검소(搜檢所)만으로 통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조정은 누구든지 잠상인을 체포했을시 장물의 반을 직급하는 등의 조치까지 취했으나 오히려 국경 지역의 변사 사건만 양산하는등 별무 소용이었다.

잠상은 의주 통관청을 통과하는 세금을 피하는 탓에 엄청난 이익이 있기에 잠상단은 거의 필사적이었다. 잠상단은 아예 일정한 규모를 갖추어 정식 상단과 경쟁을 할 정도였다. 1807년 대동강에서 포청에 잡힌 백대현(의주상인) 이사즙(개성상인)의 기록이 실린 순조실록(7년 9월 121일)을 보면 잠상단의 규모가 짐작된다.

- 토포사(討捕使) 한응검(韓應儉)이 첩정(牒呈)한 해당 절목에 의거하건대, 이번 대동강(大同江)에 정박하고 있던 의주 상인(義州商人) 백대현(白大賢), 이사집(李士楫)의 배 안에 중국의 물종(物種) 등이 많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에 의거해 즉시 백대현, 이사집과 그 과계(夥計) 김진곤(金振坤), 선호(船戶) 김군일(金君一), 김철산(金喆山) 등을 잡아들이어 모두 엄한 형신(刑訊)을 더하고 여러 가지로 구핵(究覈)하였던 바, 백대현과 이사집은 공칭(供稱)하기를, ‘소인 등은 연변(沿邊)에 살며 장사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데, 올해 봄에 들으니 중국 땅의 경계에 미곡의 값이 매우 비싸다 하기에 어리석은 소치로 감히 이익을 노릴 계책을 내어 과연 올해 6월 초8일에 김군일과 김철산의 두 척의 배를 빌려 대미(大米) 1백 50석과 소미(小米) 70석을 싣고 몰래 용천부(龍川府) 장자도 지방으로 가서 몰래 짐을 풀고, 중국의 잠월인(潛越人)으로 이름을 알지 못하는 주씨(朱氏), 장씨(張氏) 성을 쓰는 두 사람과 화매(和賣)하고는, 단목(丹木)·백반(白礬)·부초(浮椒)·유철(鍮鐵)·동전(銅錢)·은자(銀子)·자기(磁器)·유반(鍮盤)·바라(鳴囉)·명라(鳴鑼)·풍경(風磬) 등과 바꾼 뒤, 그 즉시 저자를 떠나 출발하였습니다.

백대현 이사즙은 임상옥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도강죄' '장상죄'로 참수된 바 있다.

"임행수 며칠 안에 군칙을 보내겠소이다. 협조를 부탁합니다. 자 한잔 더…."

 

"아, 저는 그만 되었습니다. 밤으로 남행길을 나서야 하거든요."

"한양에 가는 길이구료?"

"호조에서 소집한 상단 회합이 있습니다. 가을에 있을 연경 사행단에 꾸려질 상단에 참여를 하려하거든요."

"하하, 만상이 사행단의 무역까지 좌지우지 한다니 내가 기분이 좋소이다. 잘 되기를 빕니다. 그럼…."

홍경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임상옥과 작별을 했다. 할 말은 다한 셈이었다. 홍경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배웅을 하는 임상옥을 남겨 놓고 기방을 나왔다. 춘대와 단원들이 그를 앞뒤로 병풍을 치며 따랐다. 서정일기(西征日記)에는 홍경래를 십 년째 따라다니는 10여 명의 건장한 사내들을 기록한 바 있다. 서정일기는 홍경래군 토포작전을 기록한 기록물이다.

홍경래는 정주 성내의 주막으로 들어갔다. 주막 안에 키가 크고 건장한 사내가 서 있다가 홍경래를 맞았다. 우군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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