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15회 3장 [[ 서로(西路)의 상인 (1)]]
[연재소설 청룡도] 15회 3장 [[ 서로(西路)의 상인 (1)]]
  • 이 은호 작
  • 승인 2019.08.0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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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이 걸려 있는 기방은 작고 아담했다. 열려있는 방문 저쪽으로 제법 굵은 매화나무가 운치를 더해주는 편안한 집이었다. 기방은 춘대가 엄중하게 감시를 하고 있어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엿듣는 사람은 없었다. 방안에는 홍경래와 또 다른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사내는 서로(西路)의 행수(行首)로 불리는 임상옥(林尙沃)이었다. 그들은 초면이었으나 기실은 초면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홍경래외다.”
“임상옥입니다.” 
홍경래는 두 손을 방바닥에 대고 엎드려 통성명을 했다. 상대는 서북 제일의 거상(巨商)으로 개성은 물론 한양까지 세력을 넓힌 만상(灣商)의 대행수였다. 거기다 임상옥은 의주 책문후시(冊門後市)의 실질적 지배자이기도 했다.
만상은 오늘날로 말하면 대형 주식회사라 할 수 있다. 만상은 대표인 대행수 아래에 ‘도령위’ ‘수령위’ ‘부령위’ ‘차치령위’ ‘별위령위’ 등의 간부급 사원들과 과장 이하급인 실임(實任) 의임(矣任) 서기, 서사(書寫), 사환 등의 직책으로 나뉜 일사불란한 기업 조직이었다. 영위(領位) 이상이 모인 이사회인 좌중(座中)에서 상단 운영의 큰 그림이 그려지고, 영위급 이상은 선거로 뽑는 등 매우 선진적인 상업 집단이었다.

“그동안 적조했소이다.” 
홍경래가 임상옥을 쏘아 보며 말했다. 일종의 압박이었다. 서로의 상인들 중 홍경래에 협조를 하지 않은 상인은 임상옥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결례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만상의 상로를 챙겨준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임상옥은 흐트러짐 없이 대답을 했다. 홍경래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간 만상의 상로를 막아서지 않은 이유를 상대가 알고 있었다니 말이 통할 듯싶었다.

“한양까지 상로를 넓히셨지요?” 
“맞습니다. 송상과 손을 잡고 대청 무역에 나서고 있습니다.” 
“증포삼이 큰 이익이 난다면서요?"
홍경래가 자리를 고쳐 앉았다. 임상옥은 기다란 담뱃대를 꺼내 연초를 다져 넣고 불을 댕겼다.

“연초 한 대 태우겠습니다. 당모자가 한풀 꺾이면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홍삼이지요. 큰 이익이 있으리라 보고 있습니다.”
증포삼, 즉 홍삼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 조선 상단의 최대 교역품은 당모자(唐帽子)다. 당모자는 청에서 요동에 설치한 중후소(中後所)에서 양털을 이용해 만들던 방한용 모자로  조선은 일년에 대략 백만 개 정도의 당모자를 수입했다. 특히 당모자는 모양을 변형시키며 수요를 촉진하는 유행 소비품이어서 조선 각 상단의 가장 중요한 취급 상품이었다.
당모자의 확보는 조선 상단의 사활이 걸린 일이었다. 호조는 백만 개의 당모자를 의주 책문후시로 전량 들여와 각 상단에 배분을 했고 이 과정에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었다. 당모자는 수입과 배분 그리고 도소매 과정을 통해 몇 배로 값이 뛰어 상인들의 배를 불려주었다.

전국에서 거두어 청나라 사행로를   따라 교역되는 팔포(八布) 무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 당모자였다. 이 대목에서 겨우 모자 무역 하나에 조선의 상단의 운명이 걸렸겠느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겠다. 그렇다면 정조가 화성 신도시를 만들어 놓고 주민을 이주시키기 위해 취했던 조치를 하나 소개한다.
정조는 화성에 한양의 도고 상인 20인을 뽑아 화성 이주를 권유했다. 운종가의 재력가들이 허허벌판으로 옮겨갈 일이 없을 것이다. 정조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이권을 챙겨준다. 그것은 20인의 상인에게만 책문후시의 당모자 분배권을 일임한다는 것이었다.
물상 있는 곳에 자금이 몰리고 돈이 도는 곳에 사람이 모인다는 세상이치를 잘 아는 정조의 아이디어다. 그러나 이 일은 잘 되지 않았다. 이미 정착화된 유통구조라는 관습과 기득권층의 강력한 반발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모자 이익도 서서히 막을 내린다. 당모자가 큰 이익이 난다는 것을 눈치챈 조선 장인들이 직접 제조에 나섰고, 당모자 수입에 지나치게 은이 유출되는 것을 깨달은 조정의 금수 정책이 빚은 결과다. 이 시기에 인삼을 쪄서 증포하는 기술이 조선에서 개발되면서 드디어 홍삼 무역이 등장한다. 전에도 조선 인삼이 중요 교역품이기는 했으나 수삼의 부작용(?)이 있어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기에, 수삼의 부작용을 일거에 해결한 증포삼은 단숨에 청나라 일본의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한다. 조선 조정은 개성에 증포소(蒸鋪所)를 설치하고 국가의 세수책으로 삼은 것이 순조 초기다.

“임행수, 폐일언하고 묻겠소이다.” 
“말씀하시지요.”
“나를 좀 도와주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은자를 원하십니까?”
“은자를 내라면 은자를 내겠소?”
“세상은 임상옥을 가리켜 가진 거라곤 은자밖에 없고 하지요. 딱히 내놓을 거라곤 은자밖에 없기도 하고요.”
“나는 은자대신 마음을 원합니다.”
홍경래가 순간 광솔을 태우듯 인광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쏘아 보았다. 밤길을 지키고 서 있는 범의 눈빛이 따로 없었다. 임상옥은 전율을 느끼며 마른 침을 삼켰다.

“마음을 주시겠소이까?” 
“장사꾼은 마음이 없지요. 오죽하면 상인에겐 쓸개가 없다는 말이 있겠는지요? 허나 상인은  한가지 덕목이 있습니다. 그건 합문이지요.”
임상옥은 합문(蛤問)을 말했다. 합문은 조개 입마냥 입이 무겁다는 뜻이다.

“하하하, 우문에 현답이구려. 우린 동지는 못되더라도 좋은 친구는 될 수 있겠소이다.”
  홍경래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했다. 임상옥도 따라 웃으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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