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14회 2장 [하수상한 시절]
[연재소설 청룡도] 14회 2장 [하수상한 시절]
  • 이 은호 작
  • 승인 2019.08.0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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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潭比)는 남촌 창루의 행수기생(行首技生)으로 조정의 유력자들과 검계의 패자 서강단(西江團)의 비호를 받으며 남촌 창루를 포청과 별감들의 영향권 안에서 빼내는 일을 도모하다 포청에 잡혀와 있었다.

한양 안의 모든 기방들은 포청, 한성부, 전옥서 등의 포장, 별감들 한 명씩을 책임지는 것이 관습이었다.
쥐꼬리만한 녹봉으로 생도지망이 까마득한 기찰, 순찰, 토포 등의 험한 일을 하는 그들에게 조정에서 특별히 생각한 것이 기방들의 기둥서방 노릇이었다.

한양에서 기방을 연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양이 소굴 앞에 생선전을 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방과 기생들은 보호가 필요했고 조정은 한양의 치안유지와 자신들의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무부(武夫)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기방을 하나씩 맡겨 기생(寄生)하게 했다.
이 시대 한양 창루에 유행하던 노래가 하나 있다. 이옥(1760-1816)이 지은 노래다.

 순라꾼들 지금쯤 일 끝났을까.
 서방님은 날이 새야 돌아오겠지.
 먼저 잠들면 화를 낼 테고
 자지 않고 있으면 의심을 할 테지.
 巡羅今散未/ 郞歸月落時/ 先睡必生怒/不寢亦有疑/

기생은 기둥서방인 별감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기생 또한 진종일 술과 사내들에게 시달리고 파김치가 되어있다. 그런데도 심보 고약한 기둥서방이 걱정이다. 먼저 잠들었다고 화를 내고, 자지 않고 있으면 어떤 놈하고 이제껏 노닥거렸냐고 닦달하는 여항(餘巷)의 풍경이 여실하다.
이옥은 기방 주인은 물론 그 기방에 속해 사는 기녀의 딱한 모습을 또 다른 노래로 고발하고 있다.

 낭군의 이름도 모르는데.
 어찌 직함을 알까요.
 좁은 소매는 포교고
 붉은 옷은 별감이겠죠.
 不知郞名字/何由誦月落時/狹柚計捕敎/紅衣定別監/

기방이 없는 기생들은 늑대 같은 포교와 별감들 앞에 버려진 고깃덩이나 마찬가지다. 합법적으로 기방을 착취하는 구조 속에 장사밑천이 없는 맨몸 기생들은 하급 포교나 별감들의 성노리개로 전락했고 이옥은 이 부조리한 시대의 장면을 기생들의 입을 통해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옥은 이런 시로 유명했다. 그러나, 현실을 보는 남다른 안목과 현실을 가감 없이 그리는 그의 필체는 정조 임금에게 불온한 문체라 하여 상주로 충군(군형무소)을 가는 등 시련을 당하기도 한 바 있다.

“오포장, 이게 뭔가?”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동떨어진 문초를 가져온 오포장을 보고 종사관 '육형원'은 펄펄 뛰었다. 그는 금영(金營)의 도사(都事)로 나가 있다 포청으로 들어와 있었다. 금영은 충청도 감영을 말한다.

“호호, 문초기록 아닌지요?”
오포장이 실실 거리며 육형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몰라서 묻나? 풀어주라는데 장 1백에 충군을 보내라는 의견을 내?”
“호호, 형률의 의견을 거친 것입니다”
오포장이 형률(刑律)을 거론했다.  
형률은 대명률과 경국대전을 공부해 잡급직으로 형조, 포청, 한성부 등에 배속돼 있는 아전을 말한다.

“뭐야? 어떤 형률이 이 따위 의견을 낸단 말인가? 당장, 다시 만들어 와?”

육형원이 서류를 오포장에게 집어던지며 소리를 쳤다. 커다란 덩치에 구레나룻까지 무성하여 거칠게 생긴 사내였다.

“다시 만들어 오라고요?”
“그래, 다시 만들어 와”
“호호”
“웃어?”
“호호, 나으리? 아전은 웃지도 못하나요? 그런 법은 처음 들어보는군요?”
“뭐야? 자네 지금 나와 농담하나?”
“호호, 농담은요? 명이시라니 다시 만들어 오지요”
오포장은 종사관의 방을 나와 옥사(獄舍)로 가 담비를 문청으로 데려오도록 했다. 문청 한쪽에는 문초실이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죄인의 심문과 때로는 고문을 하기도 하는 곳이라 으스스한 곳이다.

“호호 니년이 기어이 일을 만들었다 이거지? 참, 장포교 자네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날랜 포졸 몇명 뽑아서 행락(行烙)을 갈 차비를 해?”
“행락이라니요?”
장포교가 갑작스런 말에 반문을 했다. 행락은 출장의 다른 말이다.

“서북으로 가서 할일이 있어. 잠깐만, 저년을 아주 고태골로 보내고 용무를 다시 말해주지”
오포장은 문청으로 끌려오는 담비를 보고 이를 으드득 하고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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