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역사칼럼] 조선시대 최고의 베스트 셀러
[충청역사칼럼] 조선시대 최고의 베스트 셀러
  • 이 청 논설위원
  • 승인 2019.08.04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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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김만수프로에게 책 한권이 왔다. 그가 얼마전 출간한 ‘포석이란 무엇인가’였다.

평소 진지한 학구적인 모습이 보기 좋았던 프로인 만큼 앞으로 바둑이론가로 대성해 주기를 기대하면서 조선후기 한 저술가를 떠올려 본다. 이 땅의 최초의 바둑 평론가라 할만한 ‘조희룡’은 ‘호산외기’에서 장혼(張混 1759-1828)을 소개하고 있다.

장혼은 가난한 집안에서 한쪽 발마저 불구로 태어났지만 효성이 깊고 스스로 깨우친 학문이 있어 시를 짓는 것은 물론 수많은 책을 저술한 인물로 그려진다.

장혼은 자신의 저술 외에도 여러권의 책을 편찬했는데 호산외기에 그 책들의 목록이 나온다.
가) 시종, 당률집영, 이견, 아희원림, 몽유편, 근취편, 절용방, 동습수방도, 나) 고문가칙, 정하지운, 대동고식, 소단광악, 초학자휘, 동민수지, 문전성보, 제의도식, (가)는 활자화 되어 지금도 전하는 책이고 (나)는 이름만 전하는데 장혼이 얼마나 출중한 저술가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호산외기에 간단한 이력이 전하는 장혼은 18,19세기의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이 말은 딱히 근거가 부족한 필자의 임의적인  말이다.

그러나 제목을 보면 조금 이해를 할 것이다. 필자는 면암 최익현의 유허(留墟)가 있는 마을에서 자랐다.  초등생 때 면암 선생의 외종손인 일역 강선생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당시 교재가 계몽편(啓蒙篇)이었다.  계몽편은 초급 한문생들의 입문서로 ‘사자소학' '동문선습'과 더불어 조선후기에서 얼마전까지도 출판되어 한자 입문서로 활용되고 있다. 이 계몽편을 장혼이 지은 것이다.

우리는 천자문이 쉬운 책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사서'보다 어려운 책이 천자문이다. 천자라는 독보적 문자에 문장의 성격을 부여하다 보니 억지가 스며 있어 성인들도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 천자문이다.  과거의 서당에서는 천자문보다 ‘계몽편’ ‘동문선습’ ‘사자소학’ 등으로 한문의 입문 과정을 거치고 사서로 들어가는 것이 상식이었다. 물론 천자문을 고집하는 훈장들도 있기는 했다.

장혼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나 당시에 한양에서 그의 제자로 통하는 사람들이 천여명이 넘는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급생들의 한자 입문에 능력이 있었던 듯하다.

특히 계몽편이란 탁월한 한자 교재를 만든 것으로 보아 교육자의 자질을 의심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장혼은 산수간(山水間)에 누정 하나 짓고 친구들과 모여 시를 쓰고 바둑 두기를 소원했다.

그러나 가난 탓에 꿈을 이루지 못하다 말년에 옥계동(玉溪洞) 산곡에 초가삼간을 한 채 구해 기엄재(己奄齋)라 이름을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찾아오는 친구들과 옥계시사(玉溪詩社)라는 동인을 만든다.

옥계시사에 참여한 인물들이 장난이 아니다.

김낙서, 임득명, 천수경 등 한다 하는 당대의 문사들이 모였고 김홍도가 화첩에 그들의 모임을 증언할 정도다.

장혼은 이들 일단의 문사들의 좌장으로 그들의 동인지의 발문을 남긴다.  같은 무리가 서로 구하고 같은 소리에 서로 화답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친밀하고 연배가 비슷하며 지근의 문사들이 모여 산수를 즐기고 시문을 좋아하기에 모임을 만들고 병오년(1786) 7월 어느날 내가 먼저 말했다.  옛말에 바둑이나 권세로 사귄 친구보다는 문학으로 사귄 친구가 좋다 했으니 한달에 한번 시사(詩社)에 모여 우의를 돈독케 할 것이다. (장혼)

어느날 옥계시사에 참가한 사람은 13명이라 ‘옥계수첩’은 전한다.
장혼은 일찍이 초등생들의 교육에 관심을 갖고 교육과 저술 활동을 왕성하게 실천을 한 사람이다.
말년에 겨우 옥계동 산곡에 초가 한 채를 마련하여 칩거하고 시를 짓고 바둑을 두며 고담준론으로 여생을 보냈다.

위로 하늘을 원망하지 말자.
원망하면 하늘이 나를 꾸짖을 테니까 아래로 남을 미워하지 말자.
탓하면 남도 날 원망할 테니.
하늘도 사람도 탓할 것 없다.
무엇을 가벼이 욕하고 책할 것인가. (仰亦不怨天 怨天天譴督 俯亦不尤人 尤人人怨讟 天人無所咎 何況輕娩娩)
장혼의 술빈시다.

적막강산에 무인가라 하던가.
필자는 그를 삶의 멘토로 생각한다. ‘계몽편'이란 베스트셀러를 남겨 필자 같은 무뢰한에게도 초급 한자를 알게 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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