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 13회 2장 [하수상한 시절]
[연재소설 청룡도 ] 13회 2장 [하수상한 시절]
  • 이 은호 작
  • 승인 2019.08.0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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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경으로부터 몇 잔의 술과 두둑한 옆전을 챙겨 기방을 나온 오포장은 북촌(北村)의 김재찬(金在讚)의 집으로 향했다.
김재찬은 평양감사를 지내다 채직되어 근신 중인 인물로 조정에 불만을 갖고 있어 포청의 기찰 대상으로 찍혀 있었다.
오포장은 콧노래를 부르며 청계천을 따라 내려가다 난전 하나를 지나 북촌 초입에 있는 김재찬의 집 주변에서 인근을 살폈다. 멀리 기와집의 처마 밑에 앉아 김재찬의 솟을대문을 지켜보는 사람이 보였다. 재빛 상의에 남색 치마를 입은 여자였다.

“호호, 저년 우직하기도 하다니까”
오포장은 뒷짐을 지고 살금살금 여자에게 다가가 그녀의 목덜미를 만졌다. 여자가 기겁을 했다.

“어머?”
“쉿! 호들갑은…. 호호.”
“포장님?”
“조용, 한가한가 보네?”
오포장이 여자가 땅바닥에 그려놓은 그림을 살펴보며 말했다. 그녀는 가희(可姬)라고 부르는 좌포청의 다모(茶母)였다.

“오셨어요?”
“호호, 그래 왔다. 그런데 이건 뭐냐?”
오포장은 가희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가희가 그린 그림을 바라다보았다. 동그라미 두 개와 그 옆에는 도끼가 하나 그려져 있고 주변에 바를 정(正)자가 한두 개씩 써 있었다.

“오늘 종일 사내 열, 여자 다섯이 들랑거렸네요”
가희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내 열 명에 계집 다섯? 그러니까 이 방울 두 개는 사내고 도끼는 계집이란 말이군? 호호”
“그들 중 이 사람들이 좀 수상하더군요”
“일곱 번째로 방문한 사내들이 수상하다고? 왜 수상하다 생각을 했지?”
오포장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정(正) 자에 굵은 줄 하나가 더 쳐져 있는 게 보였다. 글자를 모르는 가희의 재치가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세 명이 한패였는데 원행을 온 듯 후질근한 옷에 봇짐 속에 짚신이 보였거든요”
“그럼 뒤를 밟았어야지?”
“아직도 집안에 있거든요”
“그래? 김대감은?”
“오늘은 출타를 안했거든요. 모르지요 밤이슬을 밟으려지는?”
“호호, 좋아 포청으로 가 교대를 보내 줄 테니 계속 감시를 하고 있어?”
“알았네요. 어멋?”
“저건 김재찬 아냐?”
“맞네요. 따라나온 자들은 아까 들어간 자들이고요. 모두 옷을 바꾸어 입었네요”
“호호, 그래 모두 말쑥한 작자들이군? 뭐하니? 어서 뒤를 밟지 않고?”
오포장은 가희의 허벅지를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가희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치맛단을 고쳐 입고는 집을 나서는 김재찬 일행의 뒤를 밟았다.

“호호, 역시 무엇인가 있는 작자야. 잠시도 엎드려 있지를 못한다니까”
오포장은 시야에서 사라지는 가희를 보고 포청으로 돌아왔다. 문청(問廳) 안에는 여러 명의 잡범들이 잡혀와 포교들의 문초를 받고 있었다.

“포장님 이거 수결 좀 해 주시죠?”
머리에 벙거지를 쓰고 있는 털복숭이 장포교가 문초기록(問抄記錄)을 들고 말했다.

“호호, 한숨 좀 돌리고”
“육종사관이 아침부터 지랄을 한다니까요. 오포장님 자리 비웠다고요”
“호호, 그렇다고 지랄이 뭐야? 예의 없이?”
“그럼 씨부랄이라고 할까요? 그 인간 포청에 온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장포교가 침을 튀기며 문초 말미를 내밀었다. 읽어볼 것도 없이 결재를 해달라는 뜻이었다.

“호호, 그래도 상관 아니야? 자…”
오포장이 문초를 검토할 것도 없다는 듯 수결을 했다. 포교 생활 10년이 넘는 장표교를 믿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종사관이 왜 난리야? 혹시 담비 건…. 이리 내봐?”
“오포장님, 보실 거 없어요"
“볼 거 없다니? 호호. 이거봐라. 방해(放解). 이년을 기어이 풀어주라 이건가? 떡을 먹었다 이거지?”
“오포장님 모르는 척 하시고 이리 주세요”
장포교가 문초기록을 달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시 작성해? 호호, 이년을 장 1백에 충군(充軍)을 보내야 한다고 말이야”
오포장은 문초기록을 찢어 책상 밑에 버리며 말했다. 그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살짝 웃는 입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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