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 역사 칼럼] 논다는 것 그리고 게임
[ 충청 역사 칼럼] 논다는 것 그리고 게임
  • 이 청 논설위원
  • 승인 2019.08.01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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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 바둑을 ‘유어예(遊於藝)’의 하나로 평가하는 인식이 있어온 이유는 놀다(遊)와 난(作亂)의 범주를 벗어난 실례다.
 ‘요한 호이징하’가 말한 호모루덴스(homo ludens)라는 인간의 속성을 넘어 놀이 속에 무엇인가를 더 한다는 의미에서 유어예의 가치는 빛난다.

유어예는 논어 안연편에 살아 있다. 선생께서 제자 번지와 바람을 쐬러 무대를 거니셨다(樊遲從遊於舞雩之下) 이 유어는 휴양 쉬었다 충전을 했다 정도의 의미다. 공자는 말한다. 도덕인이 중요하고 예에 노는것도 중요하다고(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 공자학파의 유어는 이렇듯 일순간의 놀이나 작난과는 결이 다르다.

유어예는 놀이하는 존재인 인간의 속성 안에 한계를 두는 차단이다. 바둑은 신나게 즐기되 선을 넘지 않는 다는 동양 놀이문화의 준거로 의미가 있다.

적어도 동양 삼국의 문화속에는 그런 인식이 있어왔다. 바둑은 만 가지 놀이의 왕(碁卽萬嬉中之王)이란 말은 한중일 삼국의 역사에 수 없이 나타나는 말이다. 바둑은 우리곁에 삼국사기 초기기록인 ‘개루왕’(21대 개로왕이 아니다) 때부터 출현한다. 개루왕은 도미설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새삼 바둑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둑이 우리 역사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층위 저 아래에 묻혀 있던 오래된 것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오래전 떠돌이 개들의 천국이며 바둑의 고향인 ‘갱톡’을 간적이 있다.

설산 칸첸중가를 뒤로 하고 산속의 호수 ‘쏭고’의 신비함과 형형색색의 ‘타르초’가 가득한 ‘가촐링콤파’ 에서 합장을 하고 바둑의 흔적을 탐문했다.

‘시킴공국’
지금은 인도의 한 주가 되어버린 시킴은 티벳과 설산산맥을 사이로 두고 불과 반세기 전까지 17도 바둑이 두어지던 곳이었다. 그들은 12개의 바둑돌을 배석하는 순장식 바둑을 두고 있었고 우리의 시니어 바둑인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귀생 통어복에 30집 덤을 준다는 말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저물녘 사원 ‘상가촐링콤바’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던 황혼은 잊혀 지지 않는다. 그 황혼속에 침몰하던 시간과 역사 그리고 내가 의미를 두어온 가치들까지 모아 용해되는 듯 하던 순간...

그리고 어느 순간 동양역사에서 만 가지 놀이의 왕에서 만 가지 놀이중의 하나로 전락하는 순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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