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6회 1장 홍단[벽산검]
[연재소설 청룡도] 6회 1장 홍단[벽산검]
  • 이 은호 작
  • 승인 2019.07.18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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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실 뜬 잣나무배.
  하수를 건너가네.
  검은머리 땋아 내린 저 총각
  내가 사랑하는 님이건만.
  죽어도 못버릴 내 사랑.
  그러나 어머니는 나의 마음 몰라
  주시네’
 

수국(水國)에 가을이 깊었던 모양이다. 잣나무로 만든 배가 넓은 하수(河水)를 거슬러 오른다 한다.

하수에 띄운 작은 배라니 필경 물고기를 잡는 작은 배일 터이다. 댕기머리 총각이 노를 젓고 있다.
 

가난한 어촌의 어부다.
노래를 하고 있는 아가씨는 이 총각을 마음에 두고 있다.
죽어도 잊지 못할 사랑이라 했으니 아가씨의 마음이 붉기만 하다.
그런데 어머니가 문제란다.
가난한 무지렁이 어부에게 딸을 시집보내어 고생시킬 부모가 어디에 있겠느냐는 것이다.
장봉사가 시경 용풍의 한 수를 다 읊조리자 선아가 다음 수를 이었다.
‘둥실 뜬 잣나무배.
하수로 나아가네.
검은 머리 저 총각 나와 한 생을
하기로 한 사람.
죽어도 헤어지지 못하지만
아아 나의 어머니는 어찌 마음을
몰라주실까’

한 생을 이미 약속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하수의 강가의 갈대숲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볼을 부비며 짝짝꿍도 했다고 한다.
죽어도 헤어지지 못하다고 했으니 속정 살정도 단단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가씨가 효녀라는 거다.
총각을 사랑하는 만큼 어머니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다르다.
사랑의 당의정과 생도지망의 실체를 삶의 경험을 통하여 알기에 늙은 어머니는 철없는 딸의 사랑을 만류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위대하다.
여자의 사랑은 국경과 도덕률도 벗어날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아가씨는 끝까지 주저한다. 선아가 암송을 그치자 장봉사가 시경의 편수를 훌쩍 뛰어넘어 한 수를 더 읊는다.
 
‘나루의 물은 잔잔히 흐르는데.
꿩은 무엇이 그리워 울고 있나.
물이 깊다손 수레 반쯤
까투리는 장끼가 그리워
저리도 우나’

마음 약한 아가씨는 끝내 어머니의 뜻을 따른 듯하다. 이별의 아픔, 사랑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강가에서 노니는 들꿩들의 사랑도 부러워하며 깊지 않는 수구의 강가에서 발을 동동이고 있다. 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순정을 다하여 몸과 마음을 다 주었던 사람... 어머니의 소박한 눈도 충족시키지 못한 총각이지만 이 아가씨의 사랑은 가이없다.

‘기러기 서로 부르며
 해는 둥실 떠오르는데
 총각아 처녀를 좋아하려거든
 얼음이 얼기 전에 데려가려마’

잊으려 하면 더욱 실감나는 것이 그 사람이겠다. 못났으면 무식하기라도 할 것이지. 아가씨는 총각을 탓한다. 집으로 웃통이라도 벗고 쳐들어와 딸을 주지 않으면 함께 죽겠노라는 용기라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변변치 못한 총각은 고기만 잡고 있고 애타는 처녀는 이 겨울의 얼음이 녹기 전에 자신의 손을 잡고 도망이라도 쳐 줄 것을 기다리고 있다.

 “오! 대장, 이 아이 대단합니다. 관노 생활에서도 배운 문장을 전혀 놓치지 않았군요. 향촌 선비들에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장봉사가 손뼉을 치며 선아를 칭찬했다. 홍경래도 마치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거지나 다름없던 선아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남같지 않은 감정이 있었던 것이다.
 “장봉사, 선아의 아버지가 유치용이라더군. 들어본 이름이던가?”
 홍경래가 선아에게 들은 선아의 집안 내력을 말했다.
 

“유치용이라고요? 알다마다요. 역시 명불허전이군요. 억울하게 대역죄로 당하기는 했지만 당대의 인재로 소문이 뚜루루 하던 인물입니다. 선아가 유치용의 자식이라니 믿기지 않는군요”
 “잘 다듬으면 선아 자신에게도 단에도 훌륭한 인재가 되겠어. 장봉사가 신경을 쓰라고”
 홍경래는 장봉사에게 새삼 선아를 부탁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춘대가 행군 속도가 느린 선아를 등에 업었다. 박천 경계를 벗어나면 바로 정주(定州)였다. 선천은 정주를 관통하여 70리 길이니 서둘러야 할 거리였다.

“대장, 여기서 헤어지죠”
장봉사가 멀리 정주관아가 보이는 곳에서 말했다. 홍경래는 정주로 들어가 만상의 임상옥(林尙沃)을 만날 일이 있었고, 장봉사는 선천으로 들어가 그곳 단원인 유문제를 만나 새로 온 군수를 보고 인사를 트는 것이 목적이었다.

“각자 일을 보고 본채에서 만나지. 두루 조심하게”
“존명!”
장봉사가 군례를 하고 다섯 명의 인원을 대동하고 길을 잡았다. 홍경래 주변에는 춘대와 세 명의 사내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가깝게 붙어 호위를 펼치기 시작했다. 
  정주는 의주와 함께 서북의 가장 큰 고을로 많은 인파와 관아의 기찰 등이 삼엄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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