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역사 칼럼] 한일간의 역사학계의 수준을 극복하자
[충청역사 칼럼] 한일간의 역사학계의 수준을 극복하자
  • 이 청 논설위원
  • 승인 2019.07.11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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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대 시갑집인 만엽집이 있다. 만엽집은 일본 고대사의 비밀 창고다. 일본 고대사는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만엽집이 일본의 고대의 노래이기 이전에 한반도의 어떤 흔적이 묻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엽집에 전하는 수천편의 시중 수백편은 아직도 뜻을 파악 하지 못하고 있다.

아래의 시 한편을 보자.
莫器圓隣之大相士兄瓜揭氣
吾瀕子之射立爲兼五可新何本.
 막기원인지대상사오과게기
 오인자지사립위겸오가신하본.

위의 시는 일본 역사학자들 사이에 도저히 풀수 없는 암호같은 것이었다. 한자음을 빌려 일본식 글을 적었던 일본의 원시 언어로도 해독 불가였던 이 시를 처음 해석 한 사람이 한국의 작가인 이영희다.  도데체  이 시는 무슨 뜻일까.

이영희는 이 시를 궁금해 하다 우리의 고대 언어인 신라 향가를 기술했던 '이두'를 주목 하고 이두로 해독을 시도했다. 그러니 놀랍게도 이 시의 원형이 그려졌다. 설명이 된 것이다. 사립위겸(射立爲兼)을 보자. 함께 세우자는 정도의 이 한자의 뜻이 이두로 해독을 하니 ‘섯으니까네’라는 것이다. 섯으니까네는 경상도 말이다. 일본어는 소스이가네다. 이런식으로 이 시를 해독 하니 이런 내용이 된다.

마구 돌려라카이 큰 사시네(음부) 쪼메 알게 오라 자지 섯으니까네 오가세 여근으로.

여자의 몸에 마구 몸을 부비고 싶다는 것이다. 어서 나의 양물이 발동을 했으니 마음있는 여자는 오라는 것이다.  만엽집의 이 시는 신라의 노래였던 것이다.

경상도 사투리 걸죽한 우리의 고대의 노래가 일본의 시집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화랑세기’의 세계가 떠오른다.

신라의 풍속이 한 눈에 선하게 들어 온다. 삼국유사에 ‘지철로왕’의 거대한 양물의 기록이나 삼국사기에 보이는 선덕여왕이 여근곡을 서슴 없이 입에 담던 기록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만엽집의 해독으로 일본의 고대사의 이해보다는 오히려 신라의 고대사의 이해가 반갑다.

신라의 사랑은 달빛 처럼 은은 하고 양귀비꽃같이 붉다. 나는 달빛 아래서 실재로 양귀비꽃을 본적이 있다. 그러나 양귀비꽃이 핏빛같이 붉은 것은 아니었다. 삼국유사에 있는 사랑가다.
 선덕여왕 영묘사 행차하여
 비단옷에 황금관 쓰고
 황금 목걸이 두르고서
 사뿐 사뿐 대웅전 걸어갈 때에
 타오르는 마음 달랠 수 있었건만
 영왕 부처님 다 보고
 돌아갈때에 살짝 아주 살포시
 웃음을 흐리셨는데
 살짝 낙화(落花)를 닯은 미소에
 아 그만 나는 타버렸다네.

여왕을 혼자서 사모하다 스스로 자연 발화를 일으켜 죽은 신라 총각  ‘지귀’의 사랑가다. 얼마나 사모 하는 마음이 컷기에 자연 발화를 일으켜 자신의 몸이 타버렸을까. 신라인은 사랑에 귀천을 따지지 않았다. 수로부인은 꽃 하나를 바치는 노인에게 사랑을 주었고  김춘추는  골목에서 만난 김유신의 동생과 혼인을 했다. 선화 공주는 시장에서 만난 마 파는 상놈을 그밤으로 방으로 끌어 들이기도 한다.

기록이 없는 역사는 바로 이런 작은 연구 성과로 조금씩 밝혀진다. 그러나 이영희의 만엽집 읽기는 우리의 역사 학계에서 철저 하게 무시되고 있다.

학자가 아닌 일반인의 연구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역사 학계의 아집이 부른 결과다. 나는 한국의 역사 학자들 보다는 일본의 학자들을 더 믿는편이다.

이영희의 이 연구도 일본 학자들이 마음을 열고 받아 들이고 있다. 후꾸오까대학의 한 역사 교수는 만엽집 읽기라는 단체를 만들어 이영희를 후원하고 있다.

해독의 내용이 일본의 성적 방종과 타락을 가감 없이 전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나는 고대의 경전 시경 또한  남녀간의 은근한 정을 노래한 것으로 본다. 고루한 우리의 한문학자들이 보면 사문난적으로 다스려질 일이다. 화랑세기니 만엽집등에 보이는 우리의 고대의 사랑가는 건강 하고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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