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극장인 연경당은 순조27년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 주도로 '진장각' 옛터에 건축되었다. 진장각은 왕실의 골동품과 서화류를 보관하던 창고로 창덕궁 후원에 위치하여 궁 바깥과 차단되어 왕실의 비밀(?) 연회에 적합한 곳이었다. 연경당은 ㄷ자(字) 구조로 넓은 건물과 마당까지 있어 '보개'와 '치알'을 치면 훌룡한 무대로 변하는 곳으로 아직도 창경궁 안에 건물의 원형이 살아있다."김공... 잠시만요.""......?""휴.. 잠시만..."김윤식은 춤을 추고 돌아와 숨을 헐떡이며 자신의 팔소매

허욱이 춤을 추자 일단의 무동(舞童)들이 나와 군왕찬가를 불렀다. 무동들은 모두 여덟 명으로 팔팔수를 좋아하는 동양의 세계관의 단면이기도 하다.아, 위대하신 우리 임금님! 성대한 명에 크게 빛나네.두루 융성한 일덕(一德)이여 높은 이름 누릴 만하시네.거룩하신 상제께서 아름다운 상서를 내려주셨네.그 상서는 무엇인고? 아홉 줄기의 가화(嘉禾)라네.무동들은 노래를 부르며 손에 '경풍도'를 받들고 들어와 군왕에게 바치며 노래를 계속했다. 경풍도에 그려진 '가화'는 한줄기의 벼에 아홉 이삭이 열린다는 상서로운 벼

군왕은 연회장에 앉아서 잠깐 슬픈 생각이 들었다. 옆자리에 있어야 할 왕비가 공석(?)이었기 때문이다. 왕비는 법적으로 사망자였다.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원군의 강권으로 장례를 마친 탓이었다. 왕비의 장례는 국장(國葬)으로 치루는 것이 상례나 민비의 장례는 시골 양반집 마님 죽음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런 장례식이었다.지화자 지화자지화자 좋다.녹음방창에 새울음 좋고칠월 철렵에 시원도 하다.지화자 지화자지화자 좋다.십여 명의 기녀들이 창을 뽑고 뒷자리에 정렬한 장악원 악대의 반주가 궁궐 안을 흥청이게 했다. 기녀들은 모두 장안

"전하, 그만 연회장으로 납시지요?"허욱이 군왕과 김윤식의 대화를 끊으며 연회에 나갈 것을 권했다. 군왕의 재가 없이 이미 연회를 준비시킨 모양이었다. 허욱의 임무(?)는 군왕과 정치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국정은 대원군에게 맡기고 군왕은 그저 즐기라는 식이었다."너는 내가 부르면 언제라도 오거라. 그리고 연회에 가자. 영선사의 노고를 위로하는 자리라지 않느냐?"군왕이 김윤식에게 말했다.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날개가 꺾인 통치자의 무력감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전하...""가자꾸나?""전하...""그래. 날씨도 그리 덥지 않고 좋구

"음...무슨 일이 어찌 돌아가는 건지?"군왕은 비상한 시국 앞에 일국의 통치권자인 자신이 할일이 없다는 것이 절망스러웠다. 그리고 일목요연한 정보마저 없었다."그래 청국의 사정은 어떻더냐?"군왕은 허욱의 말을 짐짓 물리치며 김윤식에게 질문을 했다."청국도 크게 요동치고 있었나이다. 이곳저곳 나라 전체가 무엇인가를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나이다.""청국도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려 분주한단 말이냐?""군함을 만들고 병기창을 만들어 서양식 무기를 생산하는 등 일본을 뒤따르려 애를 쓰는 듯햇나이다.""오...우리만 더디구나. 우리만 소걸음인 게

김윤식을 길잡이 삼아 한양으로 들어온 청나라 군은 용산에 진을 치고 반란군의 집압에 나섰다. 아니 진압이라고 할것도 없었다. 기세등등하던 양군영의 군졸들은 지레 겁을 집어 먹고 출근을 미루고 모두 집에 틀어박혀 바깥 나들이를 삼가는 지경이었다.오경장은 궁으로 찾아가 조선 군왕을 대면하고 청군의 진입을 일리고 반란군을 토벌(?) 하겠다는 통고를 했다. 일방적인 것이었다. 사태가 이지경에 이르자 김윤식은 갑자기 정계의 중요한 인사로 떠오르게 된다. 오경장과 군왕의 연락책이자 중재자로 발탁된 것이다."군졸들은 진정이 되었느냐?"군왕이 영

주목할 사람이 한명 있다. 원세개(袁世凱)다. 원세개는 오경장의 감시역 및 참모로 따라와 '주찰총리교섭통산사'란 다소 긴 이름의 주재관으로 한양에 머물게 되는데 일종의 청나라에서 파견한 조선감시 및 정치 지도(?)역을 맡게 된다. 이 원세개가 조선정치에 끼친 역할은 한마디로 희극이다.원세개는 이홍장의 신임을 받으며 무려 10년간 조선에 남아 온갖 횡포와 호사(?)를 누리는데 행패가 자심했다. 당시의 나이가 28세로 당하는 조선 고관들의 고통이 장난(?)이 아니었다. 김윤식은 원세개와 여러 판 바둑을 둔다. 정확하게 말

필자는 당진에 산다. 인근에 있는 남양과 아산은 임오군란 이후 청군의 상륙과 일본군이 주둔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당진 면천은 김윤식이 유배를 와 살았던 곳이다. 면천은 옛날부터 군(郡)으로 독립적으로 기능해오다 20세기초 행정구역 개편시 면으로 재편된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작고 초라한 동리에 불과하다. 김윤식은 한두 곳 유배지를 경유해 면천에서 10년간 유배를 살았다.김윤식은 이 유배기간에 음청사, 속음청사 등을 집필한다. 면천은 당시 한양에서 불과 삼사 일에 불과(?)한 거리로 유배지 중에서 비교적 혜택을 받았다고 할 수

여명도 헤아리지 못하면 안개와 같다. 구한말 서세동점의 문명의 거대한 물결이 조선을 향해 다가올 때에 눈멀고 귀먹은 청맹과니에 불과하던 조선 안에서도 안개 속에서나마 무엇인가를 찾아내려 노력한 일부 식자층이 있었다. 그들은 더듬이로 어둠 속을 걸어가는 내일 없는 존재였지만 그나마도 하지 않으면 역사의 낙오자이자 방관자라는 인식이 있었다.그들은 안개 같은 여명 속에 분명하지는 않지만 창천한 하늘과 뜨거운 태양이 있음을 느끼면서도 가야할 방법을 모르던 맹아였다. 박지원은 시대를 넘겨다본 식자층의 무능력을 이렇게 자탄한다.도회지의 한복판

민비가 임오군란을 맞아 궁녀 한명과 먼 집안사람인 민응식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목숨을 연명하며 이천을 거쳐 충주로 도망길을 나서고 있을 때 청나라는 일본정부로부터 조선에 군란이 일어났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보였다. 전보는 외교 통고문으로 일본이 조선에서 발생한 변란으로 일본인이 사망하고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여 부득불 군함을 파견하여 대응키로 했으니 청국도 조선의 사정을 살필 필요가 있을 것이란 내용이었다.이 전보를 받은 총독참모인 '장수성'은 황실에 직보를 하는 한편 마침 영선사

허험, 그래도 대원군께서 일개 청의 장수에게 호락호락 하시겠나?""허? 이 양반, 깝깝하시네. 조선이 뭡니까? 청나라의 개가 아니요?""개....?""청국이 조선의 주인이라 그 말이요. 그건 당신네 양반들이 알려준 말 아니요?""끄응!""왜? 화나시요? 개가 어떻게 주인말을 무시합니까? 청나라 장수 오경장이 어리기는 하나 주인집 아들 아니요? 아하하하.""하하하."패랭이를 쓴 자의 말에 주위의 모든 사람이 웃음보를 터트렸다. 대원군의 권위(?)를 들고 나온 민응식을 물정 모르는 양반으로 치부하고 놀리고 있는 것이다."허험."민응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