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무심천변이다. 김산(金山)은 매주 월요일이면 청주에 와 무심천변을 걸어 강의가 있는 학교로 향한다. 버스로 두 시간을 와 30분쯤 시내를 걸어가면 그가 매주 3시간씩 강의를 하고 있는 학교가 있다.강의가 끝나면 나는 다시 인근 대전으로 가 찜방에서 하루를 유하고 그곳에 있는 대학에서 두 시간을 더 강의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벌써 8년째 반복되는 시간, 캠퍼스에 서 있는 아름드리 나뭇잎에 신록이 내려 또 한번 여름에서 가을이라는 시간의 순환을 앞두고 있다.수업 5분전, 학과 사무실에 강의 채크를 하고 강의실로 들어선다. 3학

사나운 바람은 매섭고도 차가웠다. 지는 달빛은 희미했고 가야할 길은 엄혹했다.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길채비는 이불 한 채, 반팔 덧저고리 하나, 두루마리 한 벌, 칠서 운고책이 한권씩. 그리고 비옷과 요강 동전 육백립이 전부였다. (猛風票熱 殘月熹微 嚴程促迫 行色悽凉 行李則一衾一半臂一周衣七書正文七卷 讀冊一卷 銅葉六百虎子 一及雨具) - 김려 일기.경기감영에서 유배 신고를 하고 곧바로 유배지로 나선 길의 날씨는 매섭기 그지 없었다. 호송을 맡은 나졸들은 김려의 행장을 보고 실망의 기색을 노골적으로 내보이며 닥달을 했다. 말도

심문관 이태영은 고문을 빼놓고는 집요하고도 매서운 질문을 반복적으로 했다. 그러나 김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진술에 진전이 없자 판관 조심태는 김신국을 증언자로 불렀다. 김신국은 위선당에 나오자마자 강이천을 욕하기 시작했다. 심문관의 질문도 필요 없었다. 그의 욕설은 한참동안 계속되었다. 다행인 것은 그의 욕설 속에 김려나 다른 사람들은 들어 있지 않았다."강이천 그놈이 요물이외다. 모든 사단은 그놈부터 나온겝니다. 그놈을 참수해야 마땅하외다."김신국은 입에 개거품을 물었다. 김신국은 땔나무꾼처럼 투박하고 무식하게 생긴 자였다.

정조가 강이천사건을 확대시키지 않으려는 방침을 정하자 조정의 각 정파 간에 미묘한 동요가 생긴 것은 당연했다. 강이천은 정감록의 도참뿐만 아니라 서학이라고 칭하는 천주교에도 깊게 빠져 있는 사람이었다. 서학을 금기대상으로 보는 정파는 사건의 확대를 원하고 상대적으로 서학에 온건한 정파는 정조의 방침을 따르며 사건의 파장을 경계했으나 확대파의 움직임이 심상찮았다.강이천사건은 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에 정황이 파악될 정도로 자세하지만 정조가 사건을 축소 미봉하려한 가장 중요한 생각이 2009년 발굴된 정조어찰집에 들어 있다. 정사년(179

강이천의 옥(獄)은 정조21년 1797년 11월초에 있었던 국체사건으로 사소한 것이 침소봉대되어 조선을 들었다 놓은 해프닝 같은 사건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전 '돈령부도정'으로 집에서 한가한 퇴직 생활을 하던 '김정국'이 집안의 동생뻘인 김신국(金藎國)에게서 이상한 말을 들으면서 시작된다. 김신국은 평소 알고 지내던 강이천이 천안 공주 아산을 돌아다니며 해랑의 설을 퍼트리고 다닌다는 것이다.김정국은 이 말을 우의정 이병모(李秉模)와의 술자리에서 말했고 이병모는 이 말의 진위를 외병조 형방에게 알

새벽 여명이 비추기 무섭게 옥사로 나졸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악귀나 한가지였다. 조선에서 귀신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조선팔도를 떨게 만드는 귀물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금오, 형조, 포청의 기무아전들이었다."나오시요?""어디로 간다는 게요? ""따라오라니까?""가겠소. 그러나 저 사람 좀 봐 주시요? 살았는지 죽었는지라도 말이요?"김려는 거적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죽은 듯 조용한 강이천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댁이나 걱정하슈. 사람은 그리 쉽게 죽지 않는다우."턱수염이 더부룩한 나졸이 김려의 등짝을 내리치며 말을 몰 듯

어둠이 내리자 옥사 안은 살풍경했다. 밖으로 뚫려 있는 흙벽의 작은 창으로 매서운 겨울바람이 밀고 들어와 땅바닥에 거적데기 몇 장 던저놓은 감방 안을 동토로 만들고 있었다. 추위가 옷섭을 스며들어와 맨살이 소름이 돋았다. 손가락 발가락이 얼어 통증이 올 정도였다."이보시요? 나장?"김려는 메아리 없는 목소리를 내다 그것도 포기하고 사태를 파악하려 애를 썼다. 경황중의 상황이지만 우왕좌왕하는 자신의 모습이 선비답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의연하지 못한 행동은 선비에게 금물인 시대였다.덜컹!그때 옥사문이 열리고 나졸들이 사람 한명을

남한강 하류에 바둑 좋아하는 선비가 살았네. 매일밤 한 노인이 찾아와 바둑을 두었네. 두 사람은 일년 이상을 그렇게 바둑을 두었다네. 그러던 어느날 노인이 말하는 거야. 나는 강에 사는 용이라고. 아직 때가 아니어 승천을 하지 못하고 있노라고. 그러면서 노인은 선비에게 기보(碁譜) 한권을 주었네. 노인은 말했다네. 이 '기보'의 주인이 바둑 세상에서 최고가 되겠지만 반대로 잃는 것도 있을 거라고. (지남규 갑오음청록)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침침했고 땅은 발목까지 쌓인 눈으로 질척거렸다. 눈이 내리는 탓인지 겨울날

'야마겐토리'라는 일본 작가가 있다. 겐토리는 김옥균에 대한 에세이 한 편을 '간사이잇찌'에 남기고 있다. 그것은 놀랍게도 김옥균과 본인방수영의 에피소드다. 필자는 벽상검을 쓰면서 여러 점의 미발굴 바둑기록을 보았는데 이것도 그 중 하나다. 사실 벽상검은 완성된 소설이 아니다. 필자는 인터넷상의 한정된 공간 안에서 그저 바둑이 좋고 김옥균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공개하며 쓰는 '초고'다.김옥균의 일본생활은 전혀 정리가 안된 인간군상의 모습이다. 뜻을 펴지 못한 망명객으로 좌절과 울분을 토

필자는 김옥균과 본인방수영의 접점을 찾아보고자 1884년부터 1895년까지 동경을 중심으로 발간된 신문 다섯 종을 점검했다. '유빙호치' '메나마시' '마루마루친문' '도쿄니치' '지지(時事)' 등이 그것이다. 김옥균과 본인방수영의 접점에는 후쿠자와우키치가 있었다. 후쿠자와는 '지'의 발행인으로 일본바둑의 어머니로 통하는 기타후미코와 슈사이, 인세끼 등과의 대국 기보를 싣는 등 일본바둑의 패트론이기도 했다.후쿠자와는 김옥균을 통해 조선병합이라는 일